[기획특집] 무료버스 타고 공원·병원으로…어르신 일상을 바꿨다

대구·경북 어르신 무임승차, 이동권 확대로 활기 되찾아
지역경제도 활력…재정 부담·서비스 지속성은 ‘숙제'

대구와 경북의 연령별 무료승차는 지원 대상을 제한한 선택적 무료화에 해당한다..사진은 대구 중구 중앙대로. /뉴스1

(대구ㆍ경북=뉴스1) 김대벽 기자

무료버스 타고 두류공원으로 ‘아침 출근’ 하는 노인들

31일 오전 7시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 성당못 입구. 물병과 등산스틱을 든 한무리의 노인들이 시내버스에서 잇따라 내렸다.

버스에서 만난 이정호 씨(74)는 “교통비가 들지 않아 월·수·금요일마다 공원을 걷고 복지관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말했다.

버스에서 알게 된 노인 6~7명은 즉석에서 걷기 모임을 만든 뒤 산책로를 걸으며 운동을 마치는 시간과 다음 일정을 정했다.

공원 앞 편의점 직원은 “이른 아침 생수나 커피를 사는 어르신이 늘면서 언제부턴가 평일 오전 풍경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2023년 7월 대구시는 어르신 시내버스 무임승차를 시작했다. 올해 72세 이상은 시내버스와 도시철도를 모두 무료로 이용하고 68~71세는 도시철도만 무료로 탈 수 있다.

대구시 집계에 따르면 무료로 버스를 이용한 노인은 2024년 19만7324명에서 2025년 20만9141명으로 약 6% 늘었다.

이용 횟수는 2766만6747회에서 3673만9948회로 32.8%, 1인당 월평균 이용 횟수는 12회에서 14회로 증가했다.

지난 4월 무임승차 이용자 200명을 조사한 결과 60.5%는 한 차례 외출 때 쓰는 돈이 이전보다 10% 이상 늘었다고 답했다.

대구정책연구원은 2023년 7월부터 2025년 말까지 사업비 920억원이 투입돼 1531억원의 사회적 편익과 611억원의 순경제효과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 어르신 시내버스 이용률은 9.67%에서 17.59%, 혼자 이동하는 비율은 32.5%에서 65%, 월평균 병원 방문 횟수는 1.26회에서 2.14회로 높아졌다.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026~2035년 연평균 351억원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무임승차에 따른 어두운 면도 있다. 지난해 대구지역 시내버스 무임승차에 따른 요금 손실액은 482억원이었다. 같은 기간 도시철도 무임승차 연령을 1세 높여 절감한 비용은 7억원에 그쳐 버스 손실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 시내버스 기사는 “노인 승객이 늘어 승하차 시간이 길어지고 배차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있다”고 도 했다.

일부 운송업체는 차량 내 노인 승객 사고가 늘면서 보험료 부담도 커졌다고 호소한다. 도시철도 무임 대상에서 제외된 65~67세 시민 사이에서는 지역 간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김정엽 대구한의대 노인의료복지학과 교수는 “무료승차는 독거노인의 외출을 늘려 사회적 고립과 우울감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며 “운송 손실액만으로 정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경북 농어촌버스, 마을과 병원·시장·은행 연결하는 이동망

30일 오전 8시30분 경북 예천군 예천읍 상설시장 앞 정류장에 농어촌버스가 멈춰서자 보따리와 진료 봉투를 든 노인 여럿이 내리더니 순식간에 의원과 약국, 은행, 시장으로 흩어졌다.

김순자 씨(78)는 “예전에는 읍내에 나오려면 아들에게 차를 부탁했지만 지금은 버스 시간만 맞추면 병원과 은행, 장보기를 혼자 해결한다”고 말했다.

정류장 벤치에서는 서로 다른 마을에서 온 노인들이 귀가 시간을 맞추며 농사일과 병원 진료 정보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구의 무료승차가 운동과 여가, 모임을 넓히는 수단이라면 경북의 농어촌버스는 마을과 병원·시장·금융기관을 잇는 생활 이동망 역할을 한다.

2025년 7월 경북도는 도내 22개 시·군에 주소를 둔 70세 이상 주민에게 시내·농어촌버스 무료승차를 지원했다.

시행 당시 대상자는 도내 인구의 17%인 43만7880명이었으며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됐다.

경북은 정산시스템 구축에 22억원을 투입하고 첫해 교통카드 발급비 14억원과 운임 보전비 50억원을 편성했다.

경북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3년 농어촌버스를 전면 무료화한 청송군은 2024년 이용객이 시행 전보다 25%, 70세 이상 이용률은 50% 넘게 늘었다.

주민 1인당 교통비 절감액은 월평균 5만원으로 추산됐다.

관광객의 버스 이용도 늘면서 정책비용을 웃도는 지역경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외국의 경우 대중교통 무료화는 모든 주민에게 적용하는 전면 무료화 특정 연령 계츷을 지원하는 선택적 무료화 할인정기권 방식으로 나뉜다.
외국은 국가·광역 통합…국내는 농촌·계층별 확대

대중교통 무료화는 모든 주민에게 적용하는 전면 무료화, 특정 연령·계층을 지원하는 선택적 무료화, 할인 정기권 방식으로 나뉜다.

경북연구원에 따르면 전 세계 200여개 도시가 다양한 형태의 무료 또는 대폭 할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2020년 국가 단위 전면 무료화를 도입했으며, 시민 1인당 연간 교통비 절감액은 500유로로 분석됐다.

에스토니아 탈린은 거주민 무료 대중교통과 함께 버스전용차로 확대, 주차요금 인상을 병행했다. 이후 대중교통 이용률은 14% 증가하고 자동차 이용은 5% 감소했다.

독일은 전면 무료화 대신 전국 근거리 교통을 월정액으로 이용하는 도이칠란트 티켓을 도입했다. 시행 1년간 5200만장이 판매됐으며 탄소배출량 180만톤을 줄인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에서는 전남 신안군이 시내버스와 여객선을 전면 무료화한 뒤 이용객이 30%, 관광객이 15% 증가했다.

경기 화성시는 어린이·청소년 선택적 무료화로 대상 계층의 버스 이용률이 40% 이상 늘었다.

청송군은 주민과 관광객 구분 없이 농어촌버스를 무료로 운행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연령별 무료승차는 지원 대상을 제한한 선택적 무료화에 해당한다.

단순 요금 면제 보다 재정·운영체계 개편 우선돼야

무료승차는 교통비 절감에 더해 병원과 시장, 복지시설 접근성을 높이고 노인의 사회활동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지방재정이 악화하면 정책의 지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

요금수입 감소가 차량 교체와 기사 처우 개선, 노선 확충 등 서비스 투자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경북은 22개 시·군이 서로 다른 운송업체와 계약하고 노선과 요금·정산체계도 시·군별로 나뉘어 광역 단위 정책 추진이 어렵다.

경북연구원은 단순한 요금 면제보다 운영체계 개편이 먼저라며 도 차원의 중복 노선 조정과 환승체계·서비스 기준 통일을 주문했다.

대안으로는 직영 공영제와 공공위탁, 공공이 운영권을 갖는 민간위탁, 광역교통공사 설립이 제시됐다.

김근욱 경북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공공이 운영을 주도하지 못하면 무료화가 운송업체의 손실을 보전하는 사업에 머물 수 있다”며 “광역 통합과 공공의 운영권 확보가 지속 가능한 무료화의 전제”라고 말했다.

dbyuc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