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국인 최초 남극세종기지 파견 간호사 김희수 씨
"기회 누구에게나 있지만, 아무에게 오진 않아"
외로울 땐 담아간 '무한도전' '침착맨' 보며 기분 전환
-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공정식 기자 = "기회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오진 않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죠."
12일은 간호사의 사회 공헌을 기리는 '국제 간호사의 날'이다. 1971년 국제간호사협의회(ICN)가 근대 간호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의 탄생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최근 대한간호협회가 발표한 '전국 간호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간호사 면허자는 약 55만 명. 이 가운데 요양기관(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29만 8554명이다.
국내 간호사 중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근무 이력을 가진 간호사가 1명 있다.
주인공은 '한국 최초'로 남극세종기지에 파견된 김희수 씨(30·여)다.
그는 1988년 우리나라가 남극대륙의 부존자원과 자연환경을 조사하고, 연구·개발하기 위해 설치한 '대한민국 남극세종기지'에서 3개월 남짓 대원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돌아왔다.
자신을 '무도 키즈'라고 소개한 김 씨에게 서울에서 1만7240㎞ 떨어진 빙하의 대륙 남극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무한도전을 펼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남극세종기지에 파견됐다.
남극 근무를 지원한 것은 '남극은 어떤 곳일까.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할까'하는 막연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미국 간호사 취업을 준비하던 그는 서울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에서 함께 일하던 의사로부터 세종기지 월동 이야기를 들었다. 삶을 무한한 도전이라 생각하던 그는 '간호사는 뽑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극지연구소 채용공고 사이트를 찾아봤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세종기지 간호사 채용공고를 운명처럼 발견하자 망설임 없이 지원해 9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채용됐다. 미국행 티켓 대신 남극행을 선택한 그에게 가족과 지인들은 염려보다 새로운 도전에 응원을 보냈다고 한다.
이미 20대 초반 유럽에서 홀로서기에 도전해 새로운 환경을 개척했던 그의 도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최초'라는 타이틀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어요. 제가 잘해야 후임 간호사에게도 기회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세종기지에 있는 동안 더 열심히 노력했어요"라고 강조했다.
남극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도 멀었다. 인천~파리(14시간), 파리~칠레 산티아고(15시간), 산티아고~푼타아레나스(4시간), 푼타아레나스~남극대륙(2시간), 남극대륙~세종기지(고무보트 30분)까지 이동에만 장장 36시간. 이틀이 넘는 긴 비행으로 온몸에 피로감이 몰려올 무렵 그는 마침내 남극에 도착했다.
남극세종기지 월동대는 1년가량 상주하며 인원은 연구, 기상, 전기, 기계, 통신, 중장비, 해상안전, 조리, 의료 분야 등 18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김 씨가 합류한 39차 월동대에는 파견 예정이던 의사가 전공의로 복귀하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할 상황이었다. 의료인력을 다시 모집한 결과 김 씨가 3개월 남짓 임시 파견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오전 8시 30분 조회를 시작으로 오후 6시까지 월동보고서 작성, 약 조제·수거, 예방 활동, 응급 키트 확인 등 다양한 간호 업무를 도맡았다.
기지에 도착한 김 씨는 의료실 정리부터 시작했다. 선입선출(FIFO) 기록 없이 방치된 의약품을 제조 일자에 맞춰 정리하고, 진료기록을 세밀하게 챙겼다.
먼지 쌓인 장비는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는 경북보건대 졸업 후 8년 차 간호사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했다.
김 씨는 “냉철하며 감정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 그래서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왜냐하면 간호학과는 1000시간의 실습을 채우고, 그 과정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요. 공격받고 다치기도 하지만 레벨이 올라가는 게임 속 주인공처럼 성장하죠. 결과적으로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나와 다른 것에 대해 두렵고 이질적인 느낌이 먼저 체감되기보단 항상 뭔가를 배운다는 경험에 설렘이 앞서곤 했어요. 남극도 마찬가지였죠.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멀다 뿐이지 세종기지도 사람 사는 곳이고, 새로운 환경을 경험한다는 것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 하죠"라고 말했다.
남극기지는 인터넷이 매우 느리고, 무엇보다 사용량이 제한돼 아날로그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다. 간호 관련 업무가 주된 일이지만 여가 때에는 대원들과 대화를 통해 살아온 이야기나 지원 동기, 가치관 등을 나눴다.
또 외국인 의사와 함께 일하는 입장이라 미국 간호사를 준비하며 공부한 영어 공부가 큰 도움이 됐다. 세종기지를 방문하는 외국기지 대원이나 세종기지에서 연구하는 외국인 연구자의 통역을 맡는 등 멀티플레이어 역할도 맡았다.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성격상 그는 친분이 쌓인 사람들과 산책이나 등산을 즐겼고, 눈과 마음으로 마음껏 담아갈 수 있도록 남극을 최대한 만끽했다.
그는 "가끔 불현듯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오프라인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담아간 TV 예능 '무한도전'과 유튜브 '침착맨'을 보며 기분을 전환했어요. '무도키즈'라서 기분 전환에는 최고"라고 했다.
'다시 남극에서 근무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묻자 그는 1초도 망설임도 없이 "갈 수 있다면 무조건 다시 간다"고 했다.
그는 귀국 후 모교인 경북보건대에서 후배들을 만나 선배 간호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들려주는 특강을 가진 뒤 현재 휴식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남극의 소중한 경험을 뒤로 한 채 앞으로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처럼 특수 부서에서 다시 무한도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김 씨는 "앞으로도 저는 간호사로 일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는 것이 삶의 목표니까요"라고 했다.
jsgo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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