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은 여전히 서른 즈음의 청춘"…고향 대구서 '30주기' 추모
"그는 떠났지만 노래는 우리와 함께 숨 쉬는 찬란한 슬픔"
- 남승렬 기자
(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여전히 그는 서른 즈음 청춘으로 우리 곁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청아한 음색과 이제는 자료 속에서만 볼 수밖에 없는 사람 좋은 미소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세상과 작별한 지 서른 해가 됐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영원한 가객' 고(故) 김광석(1964∼1996)을 그리워하고 애달파했다.
김광석이 숨진 지 정확히 30년이 흐른 6일 오후 그의 고향인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자리한 '김광석스토리하우스'.
김광석이 생존했던 1990년대 그의 팬이었다던 40~60대 시민과 그가 숨진 뒤 태어난 20·30세대의 발길로 김광석스토리하우스는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찼다.
본격적인 추모 행사가 시작되자 시민들은 삼삼오오, 혹은 홀로 고인의 생전 사진 앞에 고개를 숙이며 하얀 국화꽃을 놓았다.
주부 손민영 씨(51)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청춘을 보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지금도 그의 노래는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는 게 찬란한 슬픔처럼 다가온다"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이날 행사에서 김광석을 위한 추모 연주를 한 첼리스트 채송아 씨는 "제가 워낙 사랑하고 존경하는 고 김광석 선생님의 30주기 추모 연주를 하게 돼 너무너무 영광스럽다"며 "김광석 선생님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추모 공연에서는 채 씨 외에도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김성준, 소프라노 심규연 등이 김광석이 남긴 명곡들을 재해석한 무대를 선보였다.
또 '김광석 노래 이야기 & 인생 이야기'를 주제로 한 LP 연주 청음회도 진행됐다.
추모 행사를 주최한 사단법인 '김광석행복나눔' 태성길 이사장(72)은 "김광석과 개인적 인연은 없지만,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이었다"며 "김광석을 좀 더 리마인드시키고 대구의 명소인 김광석거리를 좀 더 활성화하기 위해 추모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를 보인 이날 김광석거리도 김광석을 추억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광석은 생전 '가수'라는 범주에 가둬두기엔 가창력과 목소리가 너무나 아까워 '가객'(歌客·시조 따위를 잘 짓거나 창을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으로 불렸다.
그는 6월 항쟁의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1987년 10월 민중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일원으로 대중에 첫인사를 했다.
그해 10월 13일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노찾사 정기공연에서 김광석은 6월 항쟁 이전에는 차마 부를 수 없던 노래 '이 산하에'로 대중에 강한 인상을 남긴다.
노찾사의 일원으로 첫 무대를 장식한 그는 이후 '동물원'의 보컬을 거쳐 솔로 활동을 하며 전성기를 맞는다.
그가 부른 '거리에서', '사랑했지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바람이 불어오는 곳', '이등병의 편지', '그녀가 처음 울던 날', '일어나', '부치지 못한 편지' 등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지금도 명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1964년 대구 중구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에서 태어난 김광석은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96년 1월 6일 새벽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pdnam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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