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투성이 됐는데 누가 사 먹겠나"…거제 포도 농가 '한숨'

폭우에 성인 머리 높이까지 잠겨…"나무서 새로 심어야"
"보험금, 경매가격 기준이라 손해 막심"…포도 축제도 취소

22일 거제시 둔덕면 하둔리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홍경문 씨가 침수 피해를 입은 포도를 들어보이고 있다. 2026.8.22 뉴스1 박민석 기자

(거제=뉴스1) 박민석 기자

"지금이 한창 출하할 때인데 침수 때문에 포도가 이 모양이 됐습니다."

22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 하둔리의 한 포도 농원에서 만난 홍경문 씨(77)는 흙투성이가 된 포도송이를 들어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7일 거제에 극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1500평 규모 홍 씨의 포도 농원은 성인 머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15년째 같은 곳에서 포도를 재배해 왔다는 홍 씨는 머리 위 포도밭 시설물을 가리키며 "물이 여기까지 찼다. 포도가 전부 물에 잠겼고 봉지를 씌워 놓은 것도 안까지 흙이 들어갔다. 이런 포도를 누가 먹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제 농원 곳곳엔 폭우가 할퀴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평소라면 한창 수확 작업이 이뤄질 시기지만, 포도송이들은 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포도알 표면은 흙탕물이 말라붙어 얼룩이 졌고, 포도를 감싼 흰 봉지도 누런 흙으로 뒤덮였다.

머리 위로 뻗은 포도 덩굴과 잎사귀에도 물에 떠밀려온 잔해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간 공들여 키워 온 포도가 일순간에 폐기물로 변해버린 상황 앞에서 홍 씨는 허탈해했다.

홍 씨는 "수시로 물을 대고 비료를 주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며 "바쁠 때는 하루 12시간씩 움직이면서 키운 포도인데 출하를 앞두고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물이 성인 머리 높이 까지 차오르며 망가진 포도들. 2026.8.22 뉴스1 박민석 기자

더 큰 걱정은 피해가 올해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무가 하루가량 물에 잠기면서 나무 자체도 피해를 봤다.

홍 씨는 "포도나무에서 단물이 나오고 있다. 탄저병이나 병충해 피해를 막으려면 나무를 모두 들어내 땅에 묻어야 한다"며 "열매도 다 버려야 하는데 나무까지 망가졌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새로 묘목을 심어도 3년 정도 길러야 수확할 수 있고 처음에는 기존 수확량의 10~20%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나무를 다 들어내면 앞으로 몇 년 동안 포도 농사를 제대로 짓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날 거제시 전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홍 씨의 근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실제 농가가 입은 손실과 재해보험이나 복구비 등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 사이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홍 씨는 "피해를 본 포도에 대한 보험금도 실제 판매가격이 아니라 경매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며 "소매로 2㎏에 1만 원을 받던 포도를 경매가격으로 보상받으면 실제 손해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무 피해도 묘목 가격을 기준으로 보상한다고 하는데 다시 심어서 수확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폭우 피해는 홍 씨 농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둔덕면 일대 포도 농가들이 침수 피해를 보면서 매년 9월 열리던 둔덕 포도 축제도 취소됐다.

pms71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