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투성이 됐는데 누가 사 먹겠나"…거제 포도 농가 '한숨'
폭우에 성인 머리 높이까지 잠겨…"나무서 새로 심어야"
"보험금, 경매가격 기준이라 손해 막심"…포도 축제도 취소
- 박민석 기자
(거제=뉴스1) 박민석 기자
"지금이 한창 출하할 때인데 침수 때문에 포도가 이 모양이 됐습니다."
22일 경남 거제시 둔덕면 하둔리의 한 포도 농원에서 만난 홍경문 씨(77)는 흙투성이가 된 포도송이를 들어 보이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17일 거제에 극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1500평 규모 홍 씨의 포도 농원은 성인 머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15년째 같은 곳에서 포도를 재배해 왔다는 홍 씨는 머리 위 포도밭 시설물을 가리키며 "물이 여기까지 찼다. 포도가 전부 물에 잠겼고 봉지를 씌워 놓은 것도 안까지 흙이 들어갔다. 이런 포도를 누가 먹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실제 농원 곳곳엔 폭우가 할퀴고 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평소라면 한창 수확 작업이 이뤄질 시기지만, 포도송이들은 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포도알 표면은 흙탕물이 말라붙어 얼룩이 졌고, 포도를 감싼 흰 봉지도 누런 흙으로 뒤덮였다.
머리 위로 뻗은 포도 덩굴과 잎사귀에도 물에 떠밀려온 잔해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간 공들여 키워 온 포도가 일순간에 폐기물로 변해버린 상황 앞에서 홍 씨는 허탈해했다.
홍 씨는 "수시로 물을 대고 비료를 주면서 정성을 다해 키웠다"며 "바쁠 때는 하루 12시간씩 움직이면서 키운 포도인데 출하를 앞두고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했다.
더 큰 걱정은 피해가 올해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나무가 하루가량 물에 잠기면서 나무 자체도 피해를 봤다.
홍 씨는 "포도나무에서 단물이 나오고 있다. 탄저병이나 병충해 피해를 막으려면 나무를 모두 들어내 땅에 묻어야 한다"며 "열매도 다 버려야 하는데 나무까지 망가졌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새로 묘목을 심어도 3년 정도 길러야 수확할 수 있고 처음에는 기존 수확량의 10~20%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나무를 다 들어내면 앞으로 몇 년 동안 포도 농사를 제대로 짓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전날 거제시 전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지만 홍 씨의 근심은 가시지 않고 있다.
실제 농가가 입은 손실과 재해보험이나 복구비 등으로 받을 수 있는 보상 사이에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홍 씨는 "피해를 본 포도에 대한 보험금도 실제 판매가격이 아니라 경매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며 "소매로 2㎏에 1만 원을 받던 포도를 경매가격으로 보상받으면 실제 손해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무 피해도 묘목 가격을 기준으로 보상한다고 하는데 다시 심어서 수확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폭우 피해는 홍 씨 농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둔덕면 일대 포도 농가들이 침수 피해를 보면서 매년 9월 열리던 둔덕 포도 축제도 취소됐다.
pms7100@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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