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 갖고 난폭 도주했지만…경찰 시료관리 부실로 투약 '무죄'

경찰 소변 시료 봉인 없이 반출…핵심 혐의 불인정
법원 "오염 가능성 배제 못 해 투약 인정 어려워"

부산고등·지방법원 깃발 ⓒ 뉴스1 윤일지 기자

(부산=뉴스1) 박서현 기자 = 경찰의 허술한 소변 시료 관리로 필로폰 투약과 마약운전 혐의가 무죄로 판단된 사건이 발생했다. 피고인은 필로폰을 소지한 채 경찰 추격을 피해 8㎞ 넘게 난폭운전을 벌여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정작 투약 여부를 입증할 핵심 증거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았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11단독 이호연 판사는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도로교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40대 A 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씨에게 약물중독 재활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도 명령했다.

A 씨는 2024년 6월 1일 오후 9시 30분쯤 부산 동래구에서 북구까지 경찰 추격을 피해 약 8.3㎞를 도주하며 난폭운전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경찰은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해 A 씨 차량을 추격했다. A 씨는 도주 과정에서 중앙선 침범과 역주행을 반복했고, 승용차와 포터 화물차를 잇달아 들이받은 뒤 달아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승용차 운전자가 전치 4주, 동승자 2명이 각각 전치 3주, 포터 운전자가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차량 2대도 파손됐다.

A 씨는 도주 과정에서 버린 클러치백에 필로폰을 보관한 혐의와 필로폰을 매매·수수한 혐의도 받았다.

조사 결과 A 씨는 터널 안에서 진로 변경 위반 9회, 중앙선 침범 2회, 안전지대 침범 1회, 진로 변경 방법 위반 6회 등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필로폰 소지·매매·수수 혐의와 도주치상, 난폭운전 혐의는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필로폰 투약과 그에 따른 마약운전, 위험운전치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경찰이 확보한 소변 시료의 채취·보관·인계 과정에 문제가 있어 해당 시료가 실제 A 씨의 것인지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판결문에 따르면 경찰은 2024년 6월 2일 A 씨의 소변에 대한 간이시약 검사를 한 뒤 시료가 담긴 증거물 병을 봉인하지 않은 채 조사실 밖으로 반출했다. 이후 시료가 어떻게 보관되고 인계됐는지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재판 과정에서 수사관은 "소변을 다시 가져와 피고인 앞에서 봉인한 뒤 당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국과수 회신 결과 실제 감정 의뢰와 시료 제출은 다음 날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관 진술과 객관적인 감정 의뢰 기록이 맞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이 같은 사정을 근거로 소변 시료의 동일성과 신뢰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이 판사는 "소변의 채취·보관 과정에서 피고인의 것과 동일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고, 인위적인 조작이나 훼손, 오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시료가 실제 A 씨의 것임을 확인할 DNA 분석 자료 등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간이시약 검사 결과만으로는 필로폰 투약 사실을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봤다.

이 판사는 "피고인이 필로폰을 투약했고 그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사고를 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투약과 마약운전 관련 공소사실에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A 씨가 필로폰을 소지하고 매매·수수한 사실, 경찰 추격을 피해 장거리 도주하며 교통사고를 낸 사실은 유죄로 인정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경찰 추격을 피해 장거리 도주하면서 다수의 교통법규를 위반했고 실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다"며 "필로폰 소지·매매·수수 범행도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wise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