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거장들의 작품…김해 곳곳 숨은 건축 '명작'

盧 대통령 묘역·국립김해박물관·기적의도서관
건축가들의 철학 담긴 도시 속 공간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김해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김해=뉴스1) 박민석 기자 = 건축은 도시의 역사와 문화, 가치관을 담아내는 그릇이자 시민의 일상을 만들어가는 공간이다. 시민들은 매일 도시의 건축물을 이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축가의 철학과 이야기를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경남 김해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이 시민들의 일상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건축물은 단순한 시설을 넘어 각 건축가의 철학과 시대정신이 담긴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김해시가 13일 주말을 맞아 지역 곳곳에 숨은 건축 명작들을 소개했다.

'빈자의 미학' 담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진영읍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은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서울시 초대 총괄 건축가와 국가건축 정책위원장 등을 지낸 승효상은 '빈자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꼽힌다.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저자인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자택 '수졸당'도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설계에서 화려한 기념비 대신 비움과 개방성을 강조한 추모 공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묘역은 봉화산 자락과 마을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승효상은 이 공간을 누구나 자유롭게 찾을 수 있는 '광장의 묘역'으로 구상했다.

지상에서 약 1m 높인 넓은 월대(月臺)에는 '사람 사는 세상' 마을의 형상을 본뜬 박석이 깔려 있다. 참배객들은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추모와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다.

묘역 중심에는 노 전 대통령의 묘비 대신 낮은 지석이 놓였다. 지석 뒤 철판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이 새겨져 있다. 철판은 시간이 흐르며 녹이 슬도록 설계돼 기억의 흔적을 담아낸다.

승효상은 멀리 떨어진 성역화된 공간이 아닌 시민 누구나 일상에서 찾을 수 있는 추모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봉화산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묘역은 권위보다 소통, 기념보다 기억에 방점을 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봉하마을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바람개비 책방 역시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김해박물관.(김해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가야의 역사와 시간을 품은 국립김해박물관

가야 역사·문화의 중심 공간인 국립김해박물관은 건축가 고 장세양의 유작이다.

장세양은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고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 출신 건축가다.

가야 건국 설화의 배경인 구지봉 자락에 자리한 박물관은 역사적 장소의 상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설계됐다.

박물관은 '철의 왕국' 가야의 정체성을 건축적으로 담아냈다.

전시동을 둘러싼 둥근 외벽의 검은 벽돌은 철광석과 숯을 형상화했고, 외벽 철판은 시간이 흐르며 녹이 슬도록 해 가야 철기문화를 상징했다.

네모난 전시동과 둥근 외벽은 유교 문화의 전통적 우주관인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을 표현했다. 박물관 전체를 조망하면 철을 녹이는 용광로를 연상하게 한다.

장세양은 박물관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담아냈다. 가야의 건국 설화가 서린 구지봉에서 박물관을 지나 정문 밖으로 나오면 현재의 김해 도심이 펼쳐지도록 설계해 시간의 흐름을 공간에 녹여냈다.

김해 기적의 도서관.(김해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김해 기적의 도서관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건축가 고 정기용의 유작으로 알려져 있다.

'감응의 건축가'로 불린 정기용은 건축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추구했다. 인위적인 조형미보다 자연과의 조화, 사람 중심의 공공성을 중시해 '생태 건축가', '흙 건축의 대가'라는 별칭도 얻었다.

김해 기적의 도서관은 이러한 철학이 집약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정기용은 김해 기적의 도서관이 '아파트 숲' 속 '생명의 정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건물과 공원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하고 옥상 녹지와 옥상 열람실을 조성했다.

또 열람동·사무동·다목적동을 분리 배치해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빗물 재활용 시설과 태양광 설비 등을 도입해 친환경성도 높였다.

도서관 내부 역시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됐다. 낮은 서가와 둥근 모서리, 다양한 독서 공간을 마련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했다.

정기용은 김해를 비롯한 전국 6개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했으며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도 그의 작품이다.

시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표 건축가들의 철학이 살아 숨 쉬는 작품들이 도시 곳곳에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다"며 "주말을 맞아 김해의 건축 명작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둘러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pms7100@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