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살인기업' 피해자父 "아들 10년째 수사…뼈라도 찾았으면"

부산지검 "참고인 인도 대기 중"…법무부 "구체적 답변 못해"
피해자 윤철완 씨 부친 "2019년 검·경 찾아간 뒤 답변 없어"

2010년 필리핀 여행을 떠났다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공군 중령 출신 윤철완 씨의 공군사관학교 시절 모습 ⓒ News1 DB

(부산=뉴스1) 장광일 기자 = "이제 10년이 넘었는데 가슴에서 내려 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영화 '범죄도시2'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필리핀 살인기업' 사건 피해자 윤철완 씨의 부친은 2일 뉴스1과 통화에서 "2019년 아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 경찰과 검찰을 모두 만났지만 6년 간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필리핀 살인기업 사건은 주범인 최세용과 김성곤, 김종석 등 일당이 2008~2011년 필리핀에서 조직적으로 한국인 여행객을 납치·감금하고 권총 등으로 위협해 돈을 빼앗은 사건이다. 이들은 살인까지 저질렀다.

시신들은 현지에서 암매장 됐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2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윤철완 씨도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2010년 8월. 공군 중령이던 윤 씨는 제대 후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해 미국을 가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미국 비자가 발급되기 전 윤 씨는 부모님께 "잠시 놀러 다녀오겠습니다"고 한 뒤 필리핀으로 떠났다.

윤 씨의 부모는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섬나라이기에 그런가보다'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윤 씨의 지인이 찾아왔다. 그도 "철완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집을 찾아온 것이다. 이에 윤 씨 부모는 인천 서부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했다.

1년 뒤 '아들을 납치했으니 돈을 보내라'는 최세용 일당의 전화를 받은 윤 씨의 부모는 사건을 인지하게 됐다.

윤 씨의 부모는 아들을 살리겠다는 일념에 이리저리 돈을 모아 최세용 일당에게 3500만여 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순 없었다.

최세용 자료사진 ⓒ News1 DB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던 윤 씨의 부모는 다른 피해자의 부모로부터 "최세용 일당의 선고가 있으니 같이 갑시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

2016년 11월 4일 부산지법 형사6부(유창훈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최세용 일당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었다.

선고 당일 피해자 유족들은 부산지법으로 모였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이름이 언급됐고, 그 이름을 들은 유족들은 큰 소리로 오열하거나 악을 지르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수많은 피해자들 중 '윤철완씨'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윤철완 씨의 부친은 "당시 다른 피해자 어머니가 저한테 '왜 철완이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할 수가 있냐'고 했다"며 "근데 우리 아들 이름은 언급이 안되니까 무슨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윤 씨의 부모는 최세용 일당에게 납치된 아들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백방으로 찾아 헤맸다. 인천에 거주하는 윤 씨 가족들은 인천지검, 경찰청, 부산지검을 찾아가 아들의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려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알려줄 수 없다', '아들 이름이 없다', '이곳에 기록이 없다' 뿐이었다.

당시 경찰은 윤철완씨 사건을 무혐의로 송치했고 검찰은 2016년 윤 씨 사건과 연루된 최세용에 대해 참고인 중지 처분을 내렸다.

검찰은 결정적 단서에 대한 추가 진술 확보 가능성을 열어두고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김종석의 현지 부인 '마델 부하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필리핀 법무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해놓은 상태다.

부산고등·지방검찰청 전경 ⓒ News1 윤일지 기자

마델 부하이는 남편 김종석이 한국인 관광객들을 납치하고 강도 살인을 일삼을 때마다 옆에서 총기와 휴대전화(대포폰) 등을 제공하면서 범행에 적극 가담한 인물이다.

10년 가까이 지난 2025년 부산지검은 여전히 "해당 사건은 참고인 중지 처분된 상태"라며 "현재까지 참고인 인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답했다.

외국에서 범죄인, 참고인 인도를 맡고 있는 법무부는 "범죄인인도법과 필리핀과의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범죄인인도 절차를 진행하고 있고, 신속한 국내 송환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조약 및 외교관계 향후 절차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정확한 답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윤 씨의 부친은 "5대 독자면서도 나한테 하나도 바라는 것이 없는 아들이었다"며 "아들이 그렇게 되고 나서 정신병원을 다니며 약을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아들의 시신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며 "다만 그 직전까지만 해도 프로그램 관계자들한테 '난 다 잊을란다', '이미 포기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아들의 뼈라도 갖고 와서 좋은데 묻어주지는 못해도 '이놈아. 왜 거기 누워있냐'라고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편 주범인 최세용과 김성곤은 2016년 열린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은 2017년 9월 이를 확정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죄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배려를 찾아볼 수 없고 치밀한 계획 하에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며 "유족들이 피해자의 생사도 모른 채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현재까지 유족들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 등에 비춰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ilryo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