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 10미터 앞두고 ‘결사저지’…불길 휩쓴 하동 ‘9일의 사투’

진화인력 5700여 명과 농민·봉사단체 등 지역사회 총력 대응
'인명·민가' 피해 없었다

경남 산청·하동 산불 엿새째인 26일 하동군 옥종면 일대에 활짝 핀 벚꽃 뒤로 산불진화 헬기가 산불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5.3.26/뉴스1 ⓒ News1 윤일지 기자

(하동=뉴스1) 강미영 기자 = 경남 산청·하동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열흘간 지역을 휩쓸었지만, 다행히 하동에서는 인명, 민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1일 오후 3시 26분쯤 산청 시천면에서 시작된 산불은 다음날 22일 오후 2시 57분쯤 강풍을 타고 하동 옥종면까지 번졌다.

31일 하동군에 따르면 이 불로 인한 산불 영향 구역은 700㏊로 당시 14개 마을 1416명이 긴급 대피했으나 수령 900년 두방리 은행나무와 두방재 관리동이 타는 것 외의 피해는 없었다.

이는 공무원과 소방, 군·경, 진화대원 등 5700여 명의 진화인력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바쁜 농사일도 포기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농민들의 용기 덕분이었다.

하동에서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은 25일 밤이었다. 당시 거센 바람에 재발화 한 산불은 정개산을 넘어 대피소가 있는 옥종면 중심부까지 번질 위기에 있었다.

이때 경남도 유형문화재를 보유한 청계사와 하동 유교 중심인 모한재를 비롯해 안계마을 등 5개 마을은 코앞까지 불길이 들이닥쳤다.

전소 유무조차 파악할 수 없던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진화인력들은 밤새 450m에 이르는 3중 소화선을 구축해 마지막 방어선을 쳤다.

돌풍과 순식간에 들이찬 연기 때문에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이들은 퇴각 직전까지 물을 뿌렸고, 마침내 불은 청계사 단 10m 앞에서 멈췄다.

청계사 관계자는 "진화인력을 남겨두고 발길을 돌리는 순간 '청계사는 우리가 지켜내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겠다"고 전했다.

까맣게 탄 청계산 뒷산.(하동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수일간 이어진 진화 작업 속에 진화인력의 피로도마저 가중되면서 한계에 달했을 때 지역 주민들이 나섰다.

딸기 수확도 포기한 농민들은 옥종면 남녀의용소방대와 농약 살수차 3대를 동원해 산불 확산 저지에 힘을 보냈다.

하동축협 또한 방역차 4대와 살수포 1대, 인력 20여 명을 투입해 산불 연접 지역과 산림·주택 경계 구간에 집중 살수를 이어갔다.

이들은 산불이 넘기 전 인근 농가 소 70여 마리와 염소 100여 마리를 빈 축사로 옮겨 동물들도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이외에도 새마을운동하동군지회, 하동군여성단체협의회 등 10개 봉사단체는 구호 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피해 주민을 돕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현재 산림 당국과 진화대는 산불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뒷불 감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불 재발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주민 대피 명령이 해제돼 이재민들은 귀가한 상태다.

하승철 하동군수는 "하동의 진짜 봄은 우리가 함께 만든 이 연대와 희망 속에 있다"면서 "군민 모두가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복구 단계에서도 행정·민간·기관이 함께 손을 맞잡고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산불진화대원이 잔불 정리를 하고 있다.(하동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myk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