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휘청이는 이주노동자들 …학원·공장 실직해 소득 '뚝'

항공편 등 끊겨 고국에도 못가는 상황…재난지원금·고용보험 절실

부산 사상구 학장동 한 가공공장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작업을 하고 있다.(이주민과 함께 제공)ⓒ 뉴스1

(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한파에 부산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생계권이 흔들리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기업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재정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인력을 꾸준히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세계 이주민의 날'을 맞았지만, 갈 곳을 잃은 이들에게 올해는 더욱 우울한 날이기도 하다.

필리핀 결혼이주민 마리아씨(36)는 한국으로 온 지 어느덧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마리아씨는 거리두기 여파 등으로 인해 학원 사정이 어려워지자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반년이 넘도록 번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일하지 못해 소득이 크게 줄었다.

지난 9월 코로나 확산세가 잠잠해지면서 어학원에 복귀해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갖고 일을 시작했지만, 최근 3차 확산으로 다시 학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리아씨는 "최근 코로나 상황이 더 나빠지면서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며 "필리핀 이주민들이 코로나19로 일자리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부산·경남 이주민 보호 시민단체 '이주민과 함께'가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총 333명 부산 거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여파로 가장 힘든 점으로 '소득감소'(66.7%)가 꼽혔다.

노동시간이 줄거나 직장 휴업 및 실직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주민의 비율은 무려 84.1%에 달했다. 이로 인해 전체 응답자 중 97명(29.1%)의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이 경제적 고충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체 응답자 중 이주노동자 5명 중 1명(21.7%)이 여전히 생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에 거주하는 한 이주노동자가 퇴근 후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이주민과 함께 제공)ⓒ 뉴스1

부산에 정착한 지 3년이 넘은 필리핀 국적 노이네이씨(25)는 지난 11월 코로나로 인해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용접공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자 그는 부산 필리핀 커뮤니티 센터가 제공하는 이주민 숙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노이네이씨는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면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며 "나 역시 그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소득도 끊긴 상태라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주변 이웃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항공편이 끊겨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점이 가장 가슴 아프다"며 "바이러스 사태가 끝나면 제일 먼저 사랑하는 이들을 보러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의 지방자치단체 외국인주민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부산지역 이주민 수는 △2016년 5만9872명 △2017년 6만4145명 △2018년 7만1570명 △2019년 7만7968명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질수록 더 많은 부산 거주 이주민들이 생계 곤란 문제에 놓일 가능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 이같은 우려에도 이주노동자가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경제적 구제책이 미비한 상황이다.

이주민 전문가들은 경제적 고충을 호소하는 이주노동자가 더이상 제도 밖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지숙 이주민과 함께 상임이사는 "재고용이 어렵고 본국 귀환이 불가한 상황에 놓인 이주민들은 긴급 고용안정 지원금 및 취약계층 생계비 융자 등 대상에서도 제외됐다"며 "실업급여에 준하는 긴급 지원책이 필요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제' 대상에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전국 다문화위원회 위원장은 "현행법에 따르면 이주노동자의 취업활동 기간은 5년 미만으로 제한돼 이 기간이 끝나면 이들은 다른 비자를 얻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항공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취업활동이 끝나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취업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고 위원장은 "취업 기한을 임시적으로 연장해주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다가오는 3차 재난지원금 대상에도 이주노동자를 포함해야 한다"며 "단속이 염려돼 병원에 가지 못하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해선 집중방역 기간 단속을 유예하기로 한 정부의 방침을 적극 홍보해 이들의 불안을 믿음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blackstamp@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