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살고 주민도 살고…신안 우이도 '풍성사구' 보존과 이용을 함께[기고]
신용석 자연환경관리기술사(국립공원협회 연구소장)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친근했던 동물은 소 아닐까. 단단한 뿔을 자랑하는 근육질 수소는 아버지를 닮았고, 깊은 눈망울로 예쁜 송아지를 핥아주는 암소는 어머니 이미지를 닮았다. 예전에 외갓집에 가면 사람 밥보다 소죽을 먼저 쑤었다. 놀지 말고 소를 뜯기고(풀을 먹이고) 오라 했던 외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지명에도 소가 많다. 소의 귀(牛耳)처럼 길다는 소귀고개가 우이령이고, 그 밑에 있는 마을이 우이동이다. 우이도(牛耳島)도 있다. 섬의 돌출된 모양이 소의 귀처럼 생겼다.
목포에서 뱃길로 65㎞, 3시간 반 거리에 우이도(신안군 도초면)가 누워 있다. 지루할 것 같지만, 뱃전에서 목포와 유달산을 바라보고, 비금도와 도초도의 평화로운 섬 풍경을 즐기며 상큼한 바닷바람을 쐬다 보면 어느새 우이도다. 여의도 면적의 3배쯤 되는 우이도는 관광지라 하기에는 '무(無)개발'된 곳이고, 단순한 어촌이라 하기에는 볼만한 곳과 이야깃거리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몇 안 남은 무공해 생태탐방지다. 우이도 탐방 1번지는 바람(風)이 만든(成) 모래언덕(沙丘) 풍성사구다.
사구는 바닷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육지 쪽에 생기는 '낮은' 구릉인데, 우이도 사구는 산으로 바람이 불어 모래를 산마루까지 밀어 올리고, 쌓인 모래가 반대편으로 흘러내려, 전체적으로 '모래 산' 모습을 빚어낸 희귀한 지형이다. 사구 정상의 높이는 50m가 넘고, 정상에서 해변까지의 길이는 80~100m에 이르는데, 예전에는 이 경사면에서 사람들이 미끄럼을 타고 놀았다. 그러나 사구가 훼손되고 모래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경사면 출입을 금지하고, 현재는 사구 정상에만 탐방객 출입을 허용하고 있다. 다도해국립공원 구역이라 본래의 지형과 경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그런데 사람 출입이 금지되자 사구에 풀이 돋고, 풀밭은 모래 이동을 방해하는 요인이 돼 사구 한쪽에 지표의 돌무더기가 드러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더구나 과거에 모래 날림을 방지하기 위해 조림한 곰솔과 칡덩굴이 계속 사구 쪽으로 침입해 모래 이동을 더욱 방해하면서 사구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우이도의 아이콘인 풍성사구가 자꾸 오그라드는 위기가 초래되고 있다. 무언가 '손길'이 필요하다.
희귀한 자연을 가장 잘 보호하는 방법은 '보존'(保存)이다. 사람 출입을 금하고 자연에 맡기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미 사람에 의해 크게 훼손되거나 변화된 장소에서는 강력한 보존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풍경과 생태계를 회복하기 어렵다. 그곳을 기반으로 삶을 영위하는 지역주민 입장에서도 엄격한 보존은 생계를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사람에게도 자연의 혜택을 주는 대안을 강구하는 것, 그것이 보전(保全) 전략이다. 국립공원의 이상도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이다.
우이도 풍성사구에 대해서 그간 여러 전문가와 단체에서 조사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대부분의 연구는 "과거에 심은 곰솔과 확산하고 있는 칡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최근에 이곳을 답사한 필자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그간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이제 본래의 모래 순환시스템을 회복시키는 적극적인 관리를 할 때가 됐다. 동시에 풍성사구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국민에게 알리는 최소한의 자연관찰 여건과 탐방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좋겠다. 사구도 살리고, 방문객에게도 즐거움과 추억을 주고, 지역주민에게도 자긍심과 경제효과를 주는 것이 현명한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영화 '오디세우스'가 인기다. 우이도에도 '한국의 오디세우스'가 있다. 우이도에서 태어난 홍어 장수 문순득이다. 그는 1802년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오키나와-필리핀-마카오-중국을 거쳐 3년 2개월 만에 우이도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표류기인 표해시말(漂海始末)을 쓴 사람은 놀랍게도 정약전이다. 흑산도로 귀향 온 정약전이 그때 소흑산도라 불리던 우이도에 머물며 문순득의 '오디세이' 이야기를 쓴 것이다. 그가 쓴 물고기 도감인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일부도 이곳 우이도에서 썼다. 우이도에는 풍경뿐 아니라 이야기가 넘친다.
우이도! 그 섬에 가면 황금빛 풍성사구, 반짝이는 백사장, 초록빛 사구 풀밭, 쪽빛과 은빛으로 빛나는 망망대해, 알록달록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촌마을,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 사람들이 있다. 문순득과 정약전의 눈물겨운 스토리도 있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달뜬몰랑길(달이 뜨는 언덕길)과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는 탐방로는 가벼운 트레킹에 적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민박집의 정성 어린 자연밥상이 있다. 풍경은 잊혀도 그 맛은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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