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도하고 일하라'…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노동의 가치, 기도·침묵 의미 묵상…"가장 행복한 삶이 수도적인 삶"

경북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전경. 수도원은 경북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에 본원을 두고 있으며 서울, 분도 노인마을(왜관리), 부산, 전남 화순군, 미국 뉴튼 등 4곳에 분원을 두고 있다. 2014.12.27/뉴스1 ⓒ News1 정훈진 기자

(왜관=뉴스1) 염지은 기자 = 서울 장충동, 동국대 지하철역 인근에서 버스로 약 3시간 반. 창문 커튼 틈 사이로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에 커튼을 젖히니 벌써 목적지인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다.

예정했던 오후 3시보다 30분쯤 일찍 도착했다. 수도원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134-1)에 위치해 있다. 왜관은 지명이다. 도심과는 거리가 멀 것으로 상상했지만 수도원 바로 앞엔 차도가 있고 맞은 편에 4~5층 건물도 여러 개 있다.

'작가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출간을 기념해 분도출판사가 초청한 독자 26명과 왜관수도원 체험에 27~28일 함께 했다.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은 지난달 출간된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수도원이다.

공 작가는 미국 선장 레너드 라루가 전쟁 후 수사가 되어 자신이 머물던 뉴튼 세인트폴 수도원의 인수를 부탁했던 왜관 수도원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주목했다. 선장은 한국전쟁 때 함경남도 흥남에서 정원 12명의 화물선에 1만4000여 명의 피난민을 거제도까지 태워 기적같이 구조한 영웅이다.

수도원에 도착하자 정문 바로 앞 언덕 위에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 눈에 띈다. 대성당이 있는 본관으로 2009년 베네딕도회 수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졌단다. 주변엔 1928년 지어진 구성당 등 오랜 역사가 한눈에 보이는 건물 2~3동이 더 있었다.

고진석 이사악 선교 담당 신부(42)가 본관 1층 로비에서 일행을 반갑게 맞는다. 약 10년 전부터 수도원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한 왜관수도원은 1회 50~80명 규모의 체험 학교를 연간 4~5차례 운영한다. 체험 학교외에도 피정과 주말 미사 등으로 수도원을 찾는 이들은 연간 2만명이 넘는다.

방 배정을 받고 성당에서 50m쯤 떨어진 숙소로 걸음을 옮겼다. 예전 수녀원으로 쓰던 3층짜리 건물이었다.

삐걱대는 낡은 나무 문을 쇠 열쇠로 여는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1.5평 남짓한 좁은 방엔 1인용 침대와 스탠드가 놓인 70~80㎝길이의 낡은 나무 책상과 나무 의자, 세면대가 전부다. 검소한 방을 예상은 했지만 순간 교도소 독방의 느낌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현재의 수사님과 신부님들은 이보다 1.5배 더 넓은 숙소를 사용한다고 했다.

책상 앞 벽의 절반을 차지한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그나마 위안을 준다. 찬찬히 둘러보니 침대가 놓인 벽쪽엔 십자가 고상이 걸려 있다.

오전 10시30분에 출발한 수도원 체험 일정은 어느새 오후 4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사악 신부의 안내로 대성당, 유리화공예실, 금속공예실, 역사전시실을 차례로 둘러봤다.

수도원은 성당을 중심으로 약 10개의 작업실로 이루어져 있다.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본원과 서울, 분도 노인마을(왜관리), 부산, 전남 화순군, 미국 뉴튼 등 4곳의 분원에는 130여 명의 수사와 신부들이 있다.

이들은 하루 5번의 기도 시간을 제외하곤 각자의 일터로 흩어져 노동을 한다. 금속공예실, 유리화공예실, 분도가구공예사, 분도출판사, 분도식품, 순심 남녀중고등학교, 금남농장, 분도 노인마을(무료 양로원)과 피정의 집(4곳), 본당(4곳)에 나뉘어 일을 한다.

1909년에 한국에 진출, 105년 역사를 가진 성 베네딕도회는 남자 수도자들로만 구성됐다.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모토아래 수도생활과 복음 선포를 병행하고 있다.

수도원엔 19세부터 101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수도사와 신부들이 있다. 독일(6명)과 토고(2)에서 온 외국인 수사와 신부도 있다. 나이가 많아 노동을 할 수 없는 수사와 신부들은 기도 수행만 한다.

대성당엔 수도원 수사들이 직접 만든 스테인드글라스와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왜관 수도원의 유리화공예실은 전국 성당에서 쓰이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금속공예실도 전국 성당에 놓일 성작과 성반, 감실, 촛대 등의 성물을 만드는 곳이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스며든 빛이 신비롭다. 2014.12.27/뉴스1 ⓒ News1 정훈진 기자

20평 남짓한 유리화공예실에는 독일에서 들여 온 800여 종의 색유리가 책장에 빼곡이 꽂혀 있었다. 이곳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이 이사야 수사(40)가 유리화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곳의 유리는 다른 곳의 유리보다 기포와 주름이 많다. 이를 통해 빛이 더 많이 산란돼 더 아름답게 보인다는 설명이다.

유리화공예실에서 일하는 수사는 모두 3명. 수사들은 기도 시간을 제외한 오전과 오후 일정을 모두 이곳에서 노동을 하며 보낸다. 기도와 함께 노동은 수도 생활의 중심이다. 베네딕도회는 일정한 장소에서 기도와 노동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삶'을 찾는 것을 추구한다. 일과는 보통 새벽 5시에 시작해 저녁 8시40분께 끝난다.

하지만 기술을 배워 노동을 하려는 젊은 수사들이 줄고 있어 수도원은 걱정이다. 안내를 하던 고 이사악 신부는 "젊은 수사들이 컴퓨터와 운전은 잘하는데 기술은 잘 배우려 하지 않는다"며 걱정했다.

고진석 이사악 신부(40) 가 경북 칠곡군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열린 '공지영 작가와 함께하는 1박2일 수도원 체험'에서 수도사들의 금속공예 기술로 만든 감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12.27/뉴스1 ⓒ News1 정훈진 기자

저녁 6시. 종소리와 함께 성당에서 저녁기도가 이어졌다. 수사와 신부들은 노동을 하다가도 종소리가 들리면 일손을 놓고 성당으로 모인다. '해빗'이란 모자가 달린 검은 색 수도복을 입은 수사와 신부들이 줄지어 성당에 들어섰다.

왜관수도원엔 75명의 수사와 신부가 있다. 이들은 일반인과 달리 제대 좌우에 놓인 기도석에 앉는다. 신부가 미사와 교육을 주로 한다면 수사는 기술을 갖고 노동을 주로 한다. 신부가 될지 수사가 될지는 수도원 입회때 본인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미사 중간 성가의 반주는 큰 성당에서도 흔하지 않은 파이프오르간 연주다. 독일 수도회에서 선물해 준 10억원을 호가한다는 파이프오르간은 분당 성요한 성당에 이어 국내 두 번째 규모다.

저녁 7시. 저녁식사 시간엔 감자탕과 소시지볶음, 호박전, 샐러드, 무생채, 총각김치가 반찬으로 나왔다. 각자 접시에 먹을만큼 덜어 먹는다. 식사는 주방 담당 수사들의 몫이다. 식후 설거지는 각자 하지만 이날 체험에 참가한 이들을 위해선 수사들과 분도출판사 직원들이 수고했다.

식사를 마친 후 저녁 8시부터는 끝기도 시간이다. 다시 성당에 70여 명의 신부와 수사들이 모였다. 저녁기도와는 달리 성당 불이 모두 꺼진 채 퇴장했다.

오후 8시30분부터는 수도원 체험에 참가한 이들과 공지영 작가, 박현동 아빠스(대수도원장·세레명 블라시오), 이석진 수도원장(그레고리오) 등 약 20명의 신부와 수사가 수도원 체험 참가자들과 함께 했다. 체험 참가자중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례를 받은 이호진씨가 딸과 함께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씨는 수도원 체험이 하고 싶어 특별히 공지영 작가에게 초청을 부탁했다고 했다.

다과회엔 독일에서 수사들이 직접 만들어 가져왔다는 소시지와 안내를 맡은 고 이사악 신부님의 어머니가 제주도에서 직접 보내왔다는 귤, 따뜻한 와인(뱅쇼) 등이 수북이 놓였다. 독일식 소시지는 왜관 수도원 수사들의 자급자족 품목 중 하나다.

수사들은 체험 참석자들을 위해 '해피 크리스마스'를 불러 주기도 했다. 또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씨를 위한 루치아노 수사의 '천이 바람이 돼어'란 제목의 성가도 이어졌다.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규칙 중 하나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이다. 수도원을 찾아온 이들을 따뜻하게 맞기 위해 고심한 수사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체험 참가자들과 공지영 작가, 신부·수사님들과의 다과회는 밤 11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체험 행사내내 강조됐던 '침묵' 규칙은 이날 저녁 만큼은 해제됐다.

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45)가 27일 경북 칠곡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열린 ‘공지영 작가와 함께하는 1박2일 수도원 체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4.12.27/뉴스1 ⓒ News1 정훈진 기자

이석진 수도원장(81)은 매일 반복되는 틀 속의 지루한 삶을 극복하는 방법을 묻는 질문에 "이 생활을 60년 하는 동안 힘이 드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뒤에는 늘 하느님이라는 백이 있었다. 가장 행복한 삶이 수도적인 삶이다. 젊은 수사들이 지금은 모르지만 내 나이쯤 되면 알 것"이라고 답했다.

공 작가는 "(신앙을 가져서) 뭐가 바뀌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태풍이 몰아칠 때 신앙이 없을때는 대책없이 나부꼈지만 지금은 기둥을 하나 붙들고 있는 것처럼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다과회에 놓인 와인은 공지영 작가가 가져온 선물이다. 공 작가는 왜관수도원에서 '미국 이모'로 불린다. 수도원에 올때마다 와인, 치즈, 케잌 등을 가져와 부잣집 미국 이모 같다해서 붙여진 별명이란다. 공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2010년 12월26일 왜관수도원을 처음으로 찾은 이래 한달에 한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

다음 날인 28일 오전 6시. 수도원에 다시 종소리가 울린다. 6시20분부터 성당에서 다시 아침 기도시간이 이어진다. 30분간의 미사 후 다시 30분 휴식. 7시30분부터는 아침식사다. 9시부터는 행사 참가자들과 공지영 작가의 대담이 다시 이어졌다. 10시30분부터는 주일 미사다. 낮 12시 소박한 수도원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1시30분, 일행은 서울로 향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수도원 체험에 참여한 이들은 이번 수도원 방문을 통해 무언가 많이 얻어가는 듯 했다. 지난 달 암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다는 황모씨는 치료에 임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간다고 했다.

23시간,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도원 체험은 참가자들에게 노동의 가치와 기도, 침묵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다.

senajy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