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 피해 막으려 '제주 노루' 유해동물 지정…제주 노루 '급감'했는데 피해 여전

전문가들 "계획 없이 유해동물 지정해 제주 노루 절멸 위기"
제주 노루, 육지 노루와 형태적, 유전적으로 다른 고유 개체

(서울=뉴스1) 김연수 기자 = 제주도에서 노루가 사라지고 있다. 농작물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제주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 남획이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정작 농작물 피해는 제주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하기 전보다 더 늘었다. 이 사이 제주도의 노루 9000여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

◇ 제주 노루 개체수 1.3만→0.38만 '급감'… 농작물 피해 '그대로'

2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발표한 '제주노루 행동·생태·관리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제주도 전역에 1만2800만으로 추산된 제주 노루는 2015년 8000여 마리, 2016년 6200여 마리로 줄더니 2018년 3800여 마리까지 감소했다. 이는 세계유산본부가 제시한 6100마리 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반면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피해 농가 수는 2014년 301곳, 2015년 321곳, 2016년 188곳, 2017년 236곳으로 조사됐다. 2018년도엔 310곳으로 2014년보다 오히려 많았다. 피해면적 역시 2014년 0.61㎢에서 2015년 0.30㎢로 크게 감소하더니 이듬해 다시 증가해 2018년 0.96㎢까지 늘었다. 제주 노루의 개체 수가 꾸준히 줄어든 것에 비춰보면 농작물 피해가 노루 때문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대목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도에서 '(제주)노루의 유해동물 지정 조례안'이 입법 예고된 당시 농민들과 수의사회, 환경단체는 팽팽히 맞섰다. 농민들은 농작물 피해를 이유로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수의사회와 환경단체는 개체 수 조절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밝히며 "생태공원을 조성해 제주 노루를 이주시키고, 제주 고유의 생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신중한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농민들과 도의원들의 생각대로 2013년 7월 1일 (제주)노루는 3년 동안 한시적 '유해동물'로 지정, 포획이 허용됐다. 그리고 2016년 한 차례 더 연장되면서 올해 6월30일까지 유효한 상태다. 현행법상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되면 총기류, 올무 등의 포획도구를 이용해 포획할 수 있다.

새끼 제주 노루를 보살피고 있는 모습 (사진 안민찬 원장 제공) ⓒ 뉴스1

◇ 전문가들, 성급한 유해동물 지정… 포획·보호 계획도 없어

"한때 제 손으로 치료해 주고 방사해 준 아이들인데 이제는 유해동물이라고 총으로 쏴 죽이고 있어요.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파서 가슴이 답답합니다"

안민찬 전 제주도수의사회장이자 현 한라동물병원 원장의 말이다. 안 원장은 2010년 제주도에 '야생동물구조센터'을 건립하고, 가축병원만 있던 제주에 처음으로 반려동물 동물병원을 개원한 인물이다.

특히 그는 '제주 노루 보호' 운동에 오랫동안 힘써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야생동물 치료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2년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 노루를 치료 하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3년 도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며 제주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한 이후 급격히 개체 수가 줄어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안 원장은 "유해동물로 지정한다고 했을 때 일본 나라현의 사슴 공원을 벤치마킹해 제주 노루도 보호하고, 수익성도 꾀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놨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제주 노루는 형태적·유전적으로 육지와 격리된 고유 개체군으로서 '제주도를 상징하는 동물'이자 '보호해야 할 동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분별한 개발로 서식지가 사라지니 노루들이 내려온 것인데, 농작물을 해친다며 유해동물로 지정해 죽인다는 것은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라며 "문제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제주노루는 2000년까지만 해도 밀렵 등으로 개체수가 줄어 대대적인 '노루보호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사진 인민찬 원장 제공) ⓒ 뉴스1

이에 전문가들은 세심한 검토 과정이나 계획 없이 진행한 도의 결정이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줄어 '제주 노루 보호 운동'을 벌이던 200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박용수 멸종위기종복원센터 포유류연구 부장은 "처음 유해동물 지정할 때 적정 개체 수를 선정해서 얼마큼 포획하고 얼마큼 보호해야 할지 계획을 갖고 했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유해동물로 지정하면서 개체 수가 급감한 것"이라며 "주민들이 당장 피해 보고 항의하니까 행정당국에서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 없이 급하게 결정해 다시 절멸될 것 같다는 아이러니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또 당시에 정말 제주 노루의 개체 수가 많아져서 피해가 발생했던 건지 아니면 중산간 지역의 난개발로 인해 내려온 것인지도 알 수 없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개발사업을 하려면 원래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제주도는 자체적으로 하다 보니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있다"며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중산간 지역의 난개발을 우려했다.

박 부장은 제주 노루의 보호 대책으로 기존시설의 활용과 제주도 데이터 공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부장은 "새로 만들기 보단 제주도에 노루생태공원과 같은 기존시설을 최대한 활용하고, 필요하다면 중산간 개발 지역 중 중요 서식지는 다시 복원해야 한다"며 "아니면 대체 서식지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또 제주도는 자체 데이터들이 잘 공유가 안되고 있다"며 "이러한 데이터들을 서로 공유해 전문가들이 만나서 다같이 이야기 해보는 자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7일 "농가피해감소와 노루개체수의 조절간의 상관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확히 밝혀진 만큼, 노루 유해야생동물 재지정이 이뤄지는 올해 유해야생동물에서 노루는 해제돼야 한다"며 "농가에는 현실적인 피해 보상방안을 제시하고 노루 침입방지시설과 기술에 대한 연구와 보급, 지원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노루 행동생태관리'에 따르면 한라산국립공원지역 1100도로와 516도로 등에서 2010년부터 2018년9월까지 로드킬 된 노루 수는 2796마리로 나타났다. (사진 안민찬 원장 제공) ⓒ 뉴스1
안 원장이 치료후 자연방사 해준 제주 노루다. 안 원장은 노루는 보호했을 땐 사람에게 가까이 오지만, 죽는다고 느끼면 어떤 동물도 오지 않는다"며 "포수들이 총을 맞고 노루가 바로 죽는 것이 아닌 여러번 쏴야 죽는다고 하더라"며 안타까워 했다. (사진 안민찬 원장 제공) ⓒ 뉴스1

yeon73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