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해 우리에 갇힌 동물원 동물들에게
[동물원 바로보기] 네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③
(서울=뉴스1) 라이프팀 = 동물의 삶에서는 먹이를 얻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극만큼이나 빈번한 것이 주변 환경으로부터 오는 다양한 감각 자극이다. 야생 서식지에서는 감각을 자극하는 온갖 종류의 요소들이 즐비하다. 공기 중에 섞여오는 다른 동물들의 소리와 냄새, 각종 자연물의 촉감과 형태, 햇볕의 따뜻함과 강물의 차가움이 동물의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을 자극한다.
그러나 동물원 우리는 그곳에 살고 있는 동물은 물론이고, 내부를 꾸며 놓은 나무나 바위, 하다못해 소리나 빛, 바람마저 들고 나기가 제한적인 공간이다. 창살은 햇볕을 쪼개고 관람창은 바람을 막는다. 바닥에 깔린 흙마저 길게는 십 수 년 이상 교체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마저도 콘크리트 바닥보단 훨씬 나은 형편이다. 실내시설인 경우에는 평생 햇볕 한 줄 쪼여보지 못하고 흙 한 줌 밟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종합해보면 동물원 환경에서는 자연에서와 같은 비일상적 감각 자극이 발생하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결론이 내려진다.
자연스러운 감각 자극이 원천적으로 어렵다면 이 또한 인위적으로 제공해야 마땅하다. '감각풍부화'라고 부르는, 사육 공간 여기저기에 낯선 향이 나도록 하거나 새로운 물건을 제공하는 등의 프로그램이다.
동물원의 동물 중에는 특히 후각에 의존하는 정도가 큰 종이 많다. 우리 인간에겐 그저 '새로운 냄새' 정도일 수 있는 수준의 냄새를 그들은 하루 종일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영역 개념을 가지는 동물들은 영역이나 여타 사물에 대한 소유권을 각자의 냄새로 표시하기 때문에 평소 후각 자극에 무척 관심이 많다. 때문에 이런 동물들에게 냄새를 이용한 행동풍부화는 아무래도 반응이 좋은 편이다.
또한 평소에는 경험해볼 수 없었던 새로운 사물을 제공해주는 것도 좋은 감각풍부화가 되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냄새는 물론 사물의 형태, 소리, 질감, 맛을 통해 오감을 모두 자극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감각자극 외에 동물원 환경이 야생에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요소는 '동물을 둘러싼 물리적 환경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모든 야생동물들은 최소한 동물원 우리보다는 큰 생활권(이나 영역)을 가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며 살기 때문에 야생에서는 매일 같은 환경에 놓일 우려가 없지만, 동물원 동물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기에 아무리 내부 환경을 잘 꾸며놓는다고 해도 결국 그것이 꾸준히 변하지 않으면 동물에게 자극을 주지 못한다. 과거에 비해 동물원들이 외관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동물 우리 내외로 조경에 힘쓰는 곳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그곳 동물들의 삶의 질은 여전한 이유라고 하겠다. 변화하지 않는 한 사육공간 내부 조경은 말 그대로 장식에 불과하다.
이런 이유로 사육공간의 물리적 환경요소 또한 계속 변해야 한다. 동물사육에 흔히 사용되는 환경요소인 나무나 돌, 흙 등의 것들은 새로 갈아주거나 배치나 조성을 달리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매번 새로운 나무와 바위와 흙을 제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기존의 환경요소들을 재활용할 수도 있다. 어제까지는 바닥에 놓여있던 나무를 오늘은 비스듬히 눕혀보고, 오늘은 여기 놓여있던 바위를 내일은 저기 놓아보는 식이다. 아예 사육장을 바꿔서 써보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생활공간 안에 생긴 물리적 변화는 동물들에게 좋은 자극거리가 된다. 변화한 환경요소들은 동물에게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동선과 생활공간을 제공한다. 또 달라진 부분을 탐색하는 과정에서는 마치 야생에서 새로운 서식지로 옮겨가며 생기는 것과 유사한 자극이 발생한다. 그 결과로 동물이 좀 더 움직이게 되고 좀 더 생각하게 되는 것은 다른 유형들과 같다.
사회성이 발달했거나 다른 종의 동물과 큰 문제없이 지내는 동물을 다른 동물과 함께 살게 해 주거나 합사의 구성을 달리 해주는 '사회성풍부화'도 있다. 자신과 생김새도 성격도 행동양상도 다른 존재와 함께 산다는 것 역시 생활 속의 꾸준한 자극 요소가 되는데, 이러한 기대효과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는지 여부는 개체 사이의 관계와 성향을 잘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실제로 서식지를 공유하는 종들의 경우에는 야생에서와 유사한 생활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돼 의미가 크다.
마지막으로는 다양한 고안물이나 상황을 제공하여 인지적 자극을 줌으로서 동물의 고민과 판단, 놀이와 학습을 유도하는 '인지풍부화'가 있다.
사실 인지풍부화의 성격은 나머지 풍부화 유형에서 다들 공유하고 있는 부분이라 따로 별도의 유형으로 삼기 어려운 점이 있다. 먹이풍부화에서의 새로운 먹이, 감각풍부화의 낯선 감각자극, 환경풍부화의 변화된 환경요소, 사회성풍부화에서의 처음 보는 개체 모두 동물에게는 모종의 인지적 자극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부차적인 인지 자극에는 '실패'가 거의 없다. 가령 먹이풍부화에서 동물이 맛만 보고 먹지 않았다면 그 프로그램은 먹이풍부화의 관점에서 실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동물은 낯선 먹이의 맛을 보기까지 고민을 했고, 맛을 본(여기서 감각풍부화도 발생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풍부화 프로그램은 두 개 이상의 유형이 겹치게 된다.) 뒤에는 먹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며 인지적 자극을 받았다.
물론 그 자극이 지속적이거나 강하지 않고, 동물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의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성공적인 행동풍부화 프로그램이라고 평가하지는 못하겠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자극을 통해 동물을 움직이고 생각하게 했다는 행동풍부화의 큰 맥락에 대해서는 엄연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렇듯 우리가 보기에는 겉으로 반응이 없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극도로 단조로운 삶을 사는 전시동물들에게는 일상 속의 작은 비일상 하나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
당장 동물원을 없애 그곳의 동물들을 전부 야생으로 보내줄 수 없다면(이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편에서 다루기로 한다.), 그 안에서만큼은 최대한 본성을 표출하며 삶을 이어갈 수 있게끔 해 주는 것이 동물원을 만든 우리 인간의 숙제일 것이다.
동물행동풍부화는 그 숙제에 대한 가장 쉽고 빠른 해답 중 하나다. 대부분의 풍부화가 대단한 비용이나 인력, 기술이나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육·전시되고 있는 동물의 갇힌 삶이 그들 본래 삶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이야말로 풍부화의 핵심이다. 그런 인식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동물이 동물원에 있음으로서 할 수 없게 된 것들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만족시켜줄 수 있을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동물원들 사이에서 동물행동풍부화란 생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동물원 및 여타 동물전시시설들은 행동풍부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아직 미진하고 느리지만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다.
이런 경향은 분명 긍정적이다. 하지만 풍부화가 일부 시설들에 의해 '합리화 방패'로 사용되는 일이 늘고 있다. 그들은 열악한 사육환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하지 않으면서 풍부화를 홍보하며 동물복지에 무척이나 힘쓰고 있는 양 말한다.
현대 동물원에서의 행동풍부화는 청소나 먹이주기와 같은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 되어야 하며, 국외의 선진 동물원들과 국내 일부 동물원에서는 실제로 이런 경향을 따르고 있다.
전반적으로 복지수준이 낮은 국내 실정에서 보면 풍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극도로 단순한 삶을 반복하고 있는 동물의 입장에서는 풍부화가 흔하고 마땅한 것이 되어야 하고, 사실 진작부터 그랬어야 했다.
우리가 가둔 동물들의 삶은 오직 우리만이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이것을 잊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동물원이라야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이라는 모순된 명제에 가장 근접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네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 끝.
최혁준(공주대 특수동물학과 2년,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네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 1편 - <동물원 동물들은 왜 불쌍한 걸까> 바로가기
▶'네 삶을 풍부하게 하리라' 2편 - <사냥할 수 없는 치타, 비행할 수 없는 독수리>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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