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판다가 한자리를 맴도는 이유
[동물원 바로보기] 볼 권리와 숨을 권리①
(서울=뉴스1) 라이프팀 = 지난 봄 한국에 자이언트판다 암수 한 쌍이 들어왔다. 이 판다들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임대 형식으로 기증한 귀하신 몸으로, 같은 방식으로 한국에 왔다가 1999년 외환위기 때 중국으로 돌아간 한 쌍 이후로 한국에 판다가 살게 된 건 17년 만이다. 이로써 한국은 올해 세계 14번째 판다 보유국(중국 제외)이 되었고, 판다는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기르게 되었다.
필자는 동물원에 보전과 무관한 해외 동물의 사육이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인지라 이 소식이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물원에서 배포하는 홍보자료들을 보며 기대를 감출 수 없었다. 국제적으로 내놓을 만한 사육시설이 많지 않은 한국에서 그야말로 세계적인 수준의 동물복지형 선진 사육시설을 보게 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동물도 아닌 판다씩이나 되는 동물이니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하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에버랜드에서 마주한 '판다월드'는 기대감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판다 두 마리에겐 흙바닥에 잔디가 깔려 있는 널찍한 개별 방사장이 주어졌다. 방사장엔 타고 놀 구조물은 물론 냉난방 시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또 전시관 곳곳에는 판다에 대한 정보들이 다양한 시청각 요소를 통해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판다월드'에 실망한 이유는 바로 모든 각도에서 판다가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시대가 바뀌어 동물원을 두고 사람들은 '종 보전 기관이다', '자연교육기관이다' 얘기하지만 여전히 동물원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은 야생동물을 한 데 모아 전시해 관람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필자가 판다 사육시설에 가진 불만은 얼핏 물색없어 보일 수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동물이 관람로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게 도대체 무슨 문제란 말인가.
동물원에서 전시하는 동물들의 90% 이상은 가축화 되지 않은 야생동물 종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시동물들이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두는 것은 선천적이고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사육되고는 있지만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친근하게 굴지 않고, 평소에 자주 만져진다고 해도 여전히 사람 손을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이 '거리 두기'의 대표적인 예다.
야생종들의 거리 두기는 위와 같은 직접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데, 시선 또한 여기에 포함된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우리만 해도 누군가 나를 뚫어져라 보는 것, 군중이 나를 둘러싸고 쳐다보는 것을 신경 쓰고 불편하게 느낀다. 전형적인 시각적 동물인데다 하루에만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 속에서 움직이고, 의사소통 시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것을 덕목으로 삼는 우리 인간조차 이러하니 야생종에 속하는 동물이 관람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많은 비인간 동물들이 상대를 똑바로 곧장 쳐다보지 않는다. 특히 포유류의 경우 인간이 속하는 영장목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시각에 의존하는 정도가 인간만큼 높지 않다. 그들에게는 색과 거리, 깊이에 대한 처리능력이 우수한 우리의 것과 같은 눈은 없지만 우리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동물들은 굳이 눈을 고정하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원하는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상대를 아예 안 쳐다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시동물에게 하듯 시선을 고정하고 쳐다보는 행위는 비인간 동물에서 공격과 적대의 의미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적과 대치할 때나 먹이를 사냥할 때 상대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게다가 우리는 직립 보행을 하기 때문에 머리 높이로만 보면 전체 동물 중 키가 꽤 큰 축에 든다. 따라서 우리는 대다수 동물을 내려다보게 된다. 거기에다 무척 부담스럽고 도전적인 시선까지 하고서 말이다. 여러 사람이 몰려들어 있다면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동물들이 관람 상황에서 단순히 신경 쓰이는 것 이상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 다시 판다 전시관으로 돌아가 보자. 관람객에게 모든 각도에서 좋은 시야를 제공하는 전시관은 반대로 말하면 동물에게 시선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모든 각도에서 제공하는 전시관이라는 뜻도 된다. 판다는 내실로 통하는 문 앞을 서성이며 같은 자리를 맴도는 정형행동을 보였다. 판다를 포위하는 모양새로 쏟아지는 관람객의 시선은 어떤 방식으로든 심리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동물원 바로보기] 볼 권리와 숨을 권리' 2편은 다음주에 계속됩니다.
최혁준(공주대 특수동물학과 2년,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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