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옛 그릇에 입힌 서양 현대미술"…글렌 라이곤 '블랙 문'전
아모레퍼시픽 본사 APMA 캐비넷 8월 14일~9월 5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세계 미술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개념 미술가 글렌 라이곤의 작품들이 국내 관객을 처음으로 만난다.
하우저앤워스의 도움을 받아 아모레퍼시픽 본사 APMA 캐비넷에서 펼쳐지는 개인전 '블랙 문'은 한국의 옛 그릇 양식과 서양 현대 미술을 결합한 독창적인 조형물을 대거 소개한다. 8월 14일부터 9월 5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검은 빛깔을 띤 이색 달항아리들을 비롯해 언어를 시각 예술로 풀어낸 대형 그림 연작인 '스테이틱'(Static)과 '리덱티드'(Redacted)를 함께 선보인다.
전시장의 중심을 차지하는 검은 달항아리는 조선시대 백자의 매력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도예가와 3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특별한 흙과 불의 온도를 실험하며 작업을 완성했다. 인위적이고 딱딱한 완벽함보다는 자연스러운 멋과 비대칭을 존중했던 옛 선조들의 미학을 그대로 이어받아 매끄럽지 않은 본연의 형태를 강조했다. 작가는 명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생각이나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뜻을 내비쳤다.
화폭에 글자를 새긴 회화 작품들도 거장의 깊은 고민을 보여준다. 제임스 볼드윈의 유명 글귀를 활용한 '스테이틱' 연작은 글씨 위에 검은 물감을 겹겹이 칠해 글자를 쉽게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방송 화면이 꺼질 때 생기는 잡음처럼 글자가 뭉그러진 모습은 가짜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서 글과 말이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또한 문장을 '엑스'(X) 표시로 지워버린 '리덱티드' 연작은 역사 속에서 잊히거나 억눌린 목소리들을 시각적으로 끄집어낸다.
이번 전시는 서양 미술가가 우리 전통 유산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새로이 바꾼 훌륭한 사례다. 단순히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문학과 역사, 그리고 사회적 문제까지 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거장의 집요함이 돋보인다.
익숙한 백자에서 벗어난 검은 달항아리와 다채로운 문자 회화는 관람객들에게 겉모습 너머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언어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있게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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