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기관장 바뀔 때마다 성과 단절 [리더 없는 타운홀 미팅]②
"기관장 한 명의 문제 아니다"…정권·기관장 바뀔 때마다 성과·방향성 '실종'
더 나은 창작환경을 위해 만든 공공기관이 지원금 매개로 예술인 관리감독 기관으로 변질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 씨어터광장에서 열린 포럼 '리더 없는 타운홀 미팅'에는 현장 60여 명과 실시간 유튜브 시청 최대 100여 명 등 총 160명이 참여한 가운데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누적된 문제들이 생생하게 민낯을 드러냈다. 이재명 정부가 임명한 공공예술기관장 인사의 적합성에서 촉발한 모임이었지만 결국 좌우 정부를 가리지 않고 관료제의 한계가 노출됐다.
공연예술인들은 국제교류의 연속성, 독립 매체의 존립, 지역축제의 자율성, 공공기관의 성과평가 방식까지 예술 현장의 문제가 공공예술기관 리더십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관장 개인의 경력보다 다른 목소리를 보호하고 현장의 요구를 정책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이 기획자는 2026년 상반기 제기된 기관장 임명 논란이 과거부터 누적된 전문성 부재와 연결돼 있다고 봤다. 그는 "더 나은 창작 환경을 위해 만든 공공기관이 오히려 예술인을 관리하는 체계가 됐다"며 "창작 현장이 왜 이런 기관들과 연결돼 있고 어떤 리더를 원하는지 함께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은지 연출가는 개별 예술인들이 작업 시간을 쪼개 같은 문제에 반복해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현실에서 피로감과 무기력을 느꼈다고 밝혔다. 홍 연출가는 "왜 지금 이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 공동의 의제로 생각해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며 공공조직 대표 임명 절차의 투명성과 민주적 절차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혜 전 국제교류 PD(프로듀서)는 "수년에 걸쳐 쌓는 신뢰를 쌓는 것이 국제교류인데 리더가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사업과 해외 파트너십이 단절된다"며 "자신의 임기 동안 거둔 성과를 자랑하는 리더가 아니라 떠난 뒤에도 실무자들이 파트너와 신뢰를 이어갈 시스템을 구축하는 리더를 원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지역문화재단 종사자는 "2년 안팎의 짧은 임기와 반복되는 외부 간섭 탓에 조직의 중장기 전망을 세우기 어렵다"며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은 전설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공극장이 제작과 협력의 공간이 아니라 시설·세입·세출을 관리하는 말단 행정조직으로 취급받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의 웹진 '연극인' 폐간 사태, 지역축제 예술감독 선임 논란, 협회 중심의 정책 설정 등의 한계, 객석점유율 등 평가지표의 개선 필요성도 거론됐다.
정진세 극작가는 서울문화재단의 웹진 '연극인' 등 비평·기록 매체의 중단을 공공예술기관이 독립 담론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봤다. 정 극작가는 "리더에게 필요한 전문성은 담론을 생산하는 능력이 아니라 담론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지켜내는 능력"이라며 "비평과 공론장을 기관의 부담이 아닌 공공자산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연출가는 2018년 안산 지역축제 예술감독 선임 논란과 1인 시위, 이후 반복된 갈등을 돌아보면서 "적합성·절차 공개·예술 독립성 요구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갈등 자체보다 힘의 방향이 일방적으로 고정된 점이 문제"라며 예술감독제를 없애는 방식이 문화정책과 행정의 올바른 해법인지 물었다.
송미성 PD는 "공공기관에서 일할 때 기관이 예술가를 위해 존재하면서도 실제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답답함을 느꼈다"며 일부 협회나 목소리가 큰 사람만 참여하는 간담회의 한계를 짚었다. 송PD는 "우리 현장이 어디에 있고 무엇을 바라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할 창구가 지속적으로 마련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선우 전 공공예술기관 근무자는 "객석 점유율을 이유로 기존 레퍼토리 공연이 다른 공연으로 교체된 경험을 전했다. 박씨는 "공공문화예술기관의 평가는 점유율과 수익률만이 아니라 예술적 성취, 지역 예술 발전 기여도, 관객 개발, 공공성을 함께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연예술인들은 다양한 현안을 해결하려면 단편적인 쟁점에 매몰되지 말고 창작을 넘어 정책과 제도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지속적인 모임과 네트워크를 통해서 문제를 공유해 공론화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개진됐다.
박성혜 무용평론가는 국정감사가 현장과 제도의 핵심 문제보다 반복되는 민원과 단편적인 쟁점에 매몰되는 모습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박 평론가는 "국회든 오늘 같은 모임이든 언론이든 계속 이야기해야 상황이 인지되고 개선의 동기가 생긴다"며 "예술가도 창작을 넘어 정책과 제도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의 연극인은 "기관장 임명 전후에만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는 정책을 바꾸기 어렵다"며 "현장과 중간지원조직이 상시로 대화할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소통의 기회가 왔을 때 제시할 정책과 기관장 기준도 현장이 미리 준비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모임과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오진 극작가는 지원금을 매개로 예술가와 기관 사이에 암묵적인 종속관계가 생기고, 예술가는 평가받지만 기관은 현장으로부터 충분히 평가받지 않는 구조를 문제 삼았다. 이 작가는 오히려 기관장이 정기적으로 공연을 보고 감상과 생각을 공개하게 하는 등 과제와 평가 기준을 역제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박지선 다원기획자는 예술가도 해마다 공공예술기관을 평가하고 우수기관과 개선이 필요한 기관을 발표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임명 뒤 민간 청문회, 현장이 추천하는 공공리더 인재 데이터베이스, 지속적인 공론장을 함께 거론하며 "기관이 하는 평가와 제도화 방식을 현장이 역으로 활용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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