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의 작가' 이배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가'란 정체성 파고든 과정이었다"

뮤지엄 산 '기다리며'전, 7일~12월 6일
회화·조각·설치·영상 아우르는 압도적 스케일

6일 뮤지엄 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배 작가가 전시 소감을 밝히고 전시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원주=뉴스1) 김정한 기자 = 한솔문화재단 뮤지엄 산(SAN)(관장 안영주)은 7일부터 12월 6일까지 이배(b.1956-) 작가의 개인전 '앙 아땅당(En attendant, 기다리며)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스페이스(Space)·아트(Art)·네이처(Nature)라는 뮤지엄의 철학을 한국적 조형 언어로 확장하며, 본관 입구부터 야외 공간까지 전시실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인 사유의 장으로 구성했다.

6일 강원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배 작가는 "이번 전시는 40년이라는 긴 타국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이라며 "이번 작업은 끊임없이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파고드는 과정이었으며, 지나온 삶 전체를 차분히 되돌아보는 거울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나에게 이번 전시는 근원을 재확인하는 시간"이라며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본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치열하게 표현하고, 그 궤적을 증명해 내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9년 프랑스 정착 이후 '숯'이라는 매체에 천착해 온 이배는 물질의 생성과 소멸, 순환의 원리를 탐구해 왔다. 전시 제목인 '앙 아땅당'(En attendant, 기다리며)은 단순한 지연이 아닌, 새로운 변화를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는 능동적인 시간을 의미한다.

나무가 가마 속에서 형태를 잃고 숯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은 작가가 추구하는 인고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작가에게 '검은 숯'은 순수함의 결정이자, 모든 것을 흡수해 정화하는 포용의 매개체이기도 하다.

6일 뮤지엄 산 전시관에서 이배 작가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뉴스1 김정한 기자

전시는 총 6개의 공간을 통해 작가의 물성과 정신성을 단계적으로 드러낸다. 본관 입구에는 2023년 뉴욕 록펠러센터에서 화제를 모았던 8m 높이의 대작 '불로부터'(Issu du feu)가 설치되어 정화와 순환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지는 청조갤러리 로비의 '붓질'(Brushstroke) 시리즈는 자연광 아래 배치되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선사한다.

갤러리 1, 2관은 '화이트'(White)와 '블랙'(Black)의 공간으로 나뉜다. 여기서 검정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심연이자 가능성의 상태로, 흰색은 비어 있는 여백과 빛으로 존재하며 음양의 조화를 이룬다. 3관 '비커밍'(Becoming)에서는 작가의 정체성인 '농부의 아들'에 주목한다. 9미터 스크린의 영상과 실제 흙으로 구현된 논 설치물은 땅과 신체, 시간의 순환을 가시화한다.

전시의 대미는 야외 공간의 브론즈 조각 '붓질' 6점이 장식한다. 10m 규모의 조형물은 주변 산세, 건축물과 호응하며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확장된 풍경을 완성한다.

이배 '기다리며'전_청조갤러리 2관 2_ⓒ Museum SAN, Photo by Sangtae Kim (뮤지엄산 제공)

이배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주제인 '기다림'은 수동적인 기다림이 아니다"며 "내가 예술을 진정으로 아는지, 내가 해온 작업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작가란 무엇인지, 그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자기 성찰의 과정을 나타내는 물리적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영상을 아우르는 압도적 스케일을 통해 관람객에게 삶의 본질과 기다림의 가치를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 기간 중에는 작가와의 만남, 예술 명상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