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이전은 예고편"…유홍준이 들려준 겸재 정선의 대기만성
10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 특별강연 열려
- 정수영 기자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정선은 70세부터가 진짜예요. 칠순 이전은 예고편에 불과해요. 70대에 훨훨 날았죠. '금강전도' 등을 보면 강약의 리듬이 굉장히 리드미컬하게 샘솟습니다."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유홍준(77)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그림 읽어주는 남자'로 변신해 약 800명 관객 앞에 섰다. 유 관장은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70대를 대기만성의 시기로 구분하며 "겸재는 84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가로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번 강연은 국중박 서화실 재개관과 정선 탄생 35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유 관장은 '겸재 정선의 삶과 예술'이라는 주제로 140분간 쉬는 시간 없이 특별 강연을 펼쳤다.
정선은 76세 되던 해, 생애 명작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비안개 걷히는 인왕산의 모습을 그렸는데, 평소 인왕산보다 훨씬 윤기 있고 중묵이 지닌 힘이 최대한 발휘된 대작"이라며 "겸재 만년의 필치가 원숙미에 달한 진경산수의 절정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박연폭포'도 70대에 완성됐다. '금강전도' '인왕제색도'와 함께 겸재의 3대 명작으로 꼽힌다. 유 관장은 "'박연폭포'는 겸재 최고의 기량이 발휘됐다"며 "겸재 필치에서 강약의 대비가 얼마나 능숙하게 구현되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정선의 초기작 '옹천'도 언급했다. "이 그림의 핵심은 옹천 벼랑길 모퉁이를 돌아서는 나귀 뒷다리와 꼬랑지"라며 "정선의 센스와 유머가 드러나는 대목인데, 유머를 구사했다는 건 대상을 장악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어 "대가만이 할 수 있는 특질"이라고 덧붙였다.
유 관장에게 '옹천'은 각별한 작품이다. 이 그림 덕분에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다. 1972년 12월 군에서 휴가를 나와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실에 전시된 '옹천' 앞에서 한 여학생을 만났고, 그 인연이 이어져 백년가약을 맺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그림이 내 인생을 바꿨다, 나귀 뒷다리와 꼬랑지를 발견한 혜안 덕분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해 객석에 큰 웃음을 안겼다.
유 관장은 "내 강의 듣고, 국중박 전시 보시고, 겸재정선 미술관(서울 강서구 소재)도 가 보시라"라며 "4월에 제가 미술관에서 또 강연하니까 듣고 싶은 사람은 오셔도 좋다"고 하자 객석에선 또 한 번 웃음이 터졌다.
이날 강연회에 참석한 40대 이 모 씨(서울 마포구)는 "사실 겸재 정선보다 유홍준 관장님 '직강'이라고 해서 왔다(웃음)"며 "정선이 긴 세월 동안 그림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업(業)의 완성도를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는 점이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편 서화실에서는 재개관을 기념해 주요 작가와 시대를 조명하는 주제 전시가 열린다. 오는 4월 26일까지 '겸재(謙齋) 정선(鄭敾): 아! 우리 강산이여!'를 비롯해,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5월 4~8월 2일),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8월 10~11월 29일), '조선 모더니즘: 조선 말기의 회화'(12월 7~27년 2월 28일)가 이어진다.
js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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