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 "올해 1987년 같은 분기점 될 것"(종합)

소극장 판에서 기자간담회 "블랙리스트 상처 치유할 것"
"산하 3개 극장 특성화, 동시대 연극 강화, 시즌단원 개편"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이 24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소극장 판에서 취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하 국립극단 제공 ⓒ News1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후대 사가들은 올해를 1987년 못지않은 역사적인 분기점으로 기록할 겁니다. 국립극단도 이런 시대에 발맞추는 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24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소극장 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한국 연극은 지난 몇 년간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됐고, 한국 사회도 내상을 입었지만 이제는 ‘치유’와 '성찰' 그리고 ‘개혁’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국립극단도 블랙리스트를 촉발한 '개구리' 사태에서 보듯 때로는 상처받고, 때로는 자기 검열의 모순에 빠졌지만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또 전임자들의 좋은 점들은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국립극단은 1960년 창단했으며 명동예술극장, 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판 등 연극 전용관 3곳을 보유한 국내 최대 연극제작 단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연극 '개구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사전 검열을 하는 등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예술가를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사태를 촉발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성열 국립극단 예술감독ⓒ News1

이 예술감독은 "가장 선진적인 형태는 어떤 의견이든 다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며 "세금으로 운영하는 극단인 만큼 정치적인 건 아예 하지 말자는 의견도 있지만, 계속 고민하고 현장과 논의해 입장을 찾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립극단은 '연극계의 종갓집'이어서 지켜야 할 가치가 크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며 "국립극단 역시 개구리로 인해 큰 피해를 받아 내상이 있는데, 전통을 지키고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으로 확장해 새로운 연극의 전통이 뿌리박도록 하는 게 가장 큰 의무"라고 했다.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걸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예술감독은 "연극은 빵이며 거울"이라며 "'동시대적 연극'을 향해 큰 틀 안에서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창작극과 신작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한국 연극을 중심으로 한 현장 간담회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지역 연극과 연계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국립극단 3개 극장 가운데 명동예술극장은 관객 중심의 레퍼토리 극장으로, 백성희장민호극장은 작가 중심 창작 극장으로, 소극장 판은 연출 중심의 실험 극장으로 각각 특성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명동예술극장은 중장년 관객들이 안심하고 볼 수 있는 작품을 올리고, 나머지 두 극장은 실험적 작품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예술감독이면서 3개 극장장인 현재 예술감독 제도를 보완하겠다"며 "현 규정 아래서 연출 중심의 실험적인 작품을 위해 윤한솔 극단 그린피그 대표를 '판 예술감독'으로 임명했으며, 작품개발실장(드라마터그)을 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성열 예술감독과 윤한솔 연출가. ⓒ News1

이 예술감독과 마찬가지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윤한솔 판 예술감독은 "'인간다운 삶'이라는 국립극단의 선언문을 봤다"며 "국립극단이 왜 블랙리스트에 침묵했는지, 앞으로 침묵하는 게 세금을 잘 쓰는 건지 답을 얻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립극단이라고 실험적인 연극만 할 수는 없다"며 "국립극단이란 무엇인지, 동시대에 필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겠다"고도 했다. 윤 감독은 함께 작품을 준비할 연출가로 박해성 상상만발극장 대표, 남인우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하수민 즉각반응 대표, 김지나(본명 김현진) 연출가 등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 News1

국립극단은 이날 간담회에선 기존의 '시즌 단원제'도 개편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시즌 단원제는 제한은 50세에서 45세로 내리고, 계약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린다.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작품에 전념할 수 있는 젊은 단원들을 더 보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예술감독은 올해 선보일 작품으로는 △레퍼토리 '3월의 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가지' △칭작 신작 '얼굴도둑' '전시의 공무원' '2센치 낮은 계단' △세계명작 '성' '페스트' △근현대극 '운명' '호신술'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또 국립극단 산하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를 통해 창작 연구와 청소년극 공모, 이동 공연 워크숍 활동을 진행할 뿐만 아니라 신작 '사물함', 기존 레퍼토리 '죽고 싶지 않아', 해외 교류 작품 '오렌지 북극곰' 등을 올해 선보일 것이라고도 했다.

국립극단 ⓒ News1

이 예술감독은 "연극인들은 시민들에 필요한 문화의 빵을 열심히 만드는 제빵사이고, 국립극단은 그중 제일 큰 빵 공장인 셈"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연극은 자연에 거울을 비추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연극은 시대를 있는 그대로 비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월10일 임명된 그는 1985년에 연극 현장에 몸담은 이후 30년 이상 다양한 연극의 연출과 제작을 해왔다. 연극계에선 이성열 예술감독이 작품성뿐만 아니라 선후배 간의 신뢰가 높아서 위기에 빠진 국립극단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연출은 자신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작품활동에 곤란을 겪기도 했다.

이 예술감독은 연세대 사학과에 입학해 대학 극예술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연극에 입문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에서 연기와 연출을 배우고, 군 제대 이후에는 극단 산울림(대표 임영웅)에서 연출을 익히며 산울림 소극장의 극장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1996년 극단 백수광부 창단작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비롯해 △연극 '햄릿아비'(제37회 서울연극제 연출상, 대상) △'과부들'(제49회 동아연극상 작품상) △'봄날'(제30회 서울연극제 연출상) 등 여러 작품을 연출했다. 또 무용 '비천사신무' '두 도시 이야기' '유랑' '운수좋은 날' 등을 연출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여행', '과부들', '그린 벤치', '봄날', '햄릿 아비' 등이 있으며,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07년 김상열 연극상, 2012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2013년 이해랑 연극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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