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뮤지컬 '데스노트'…김준수·홍광호의 팬이 아니라면...
- 박창욱 기자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최근 유명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이 일었다. 이 과정에서 '문단 권력'으로 불리는 대형 출판사와 거대 언론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거셌다. 과도한 의미 부여와 영혼없는 '주례사 비평'으로 신 씨를 막무가내로 스타로 키웠다는 지적이다.
신 씨를 과대포장하고 허위광고해 '돈벌이 상품'으로 만들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문학을 피폐하게 만들었다는 아주 거친 비판도 나왔다. 스타 작가로서 권력이 과거 십 수년간 수 차례 제기됐던 표절 의혹을 묵살해 한국 문학의 오늘을 참담하게 만들었단 것이다.
그런데 뮤지컬 '데스노트'를 보고서는 논란의 중심이 된 신경숙 씨가 떠올랐다. 이 작품에 표절 의혹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신경숙 씨가 스타 작가로서 가진 권력으로 그에게 쏟아진 숟한 표절 의혹을 깔고 뭉갰던 사례에서 보듯, 스타가 가지는 '까임 방지권'(비판받지 않는 권력을 일컫는 속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꼈다는 의미다.
지금껏 많은 뮤지컬을 봤지만, '한류 스타' 김준수와 '뮤지컬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홍광호의 공연을 본 건 이번 데스노트가 처음이다. 여태껏 나온 기사에서 김준수와 홍광호에 대한 악평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 찬사 일색이었다. 그렇게 잘 한다고 하니 공연을 보기 전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주인공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옥의 티'로 느껴졌다. 소설가 신경숙의 경우처럼 이 두 스타는 뮤지컬 배우로서 평가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 두 주인공 '라이토'와 '엘' 역을 맡은 홍광호와 김준수에 대한 '하트 뿅뿅 팬심'이 없는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우선 두 주인공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매력적인 목소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연기력이다. '메소드' 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일단 대사 전달부터 웅얼거리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동명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재미난 스토리에 몰입하지 못하게 공연 내내 방해가 됐다.
노래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몰입하게 만드는 연기력을 가진 베테랑 조연들과 함께 서면 그런 점은 더 티가 많이 났다. 가장 기본인 대사 전달부터가 제대로 안 되니, 주연으로서 무대를 카리스마 있게 끌고 간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김준수에겐 아쉬움이 하나 더 있다. 뮤지컬 무대인데도 콘서트에서 부르는 창법 그대로를 사용했다. 김준수는 자신이 부르는 모든 '넘버'(삽입곡)마다 끝음을 길게 빼서 불렀다. 이 창법은 발라드를 부를 땐 멋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뮤지컬 넘버와는 분명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뮤지컬 넘버는 음악이기도 하고 대사이기도 하다. 극적 전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뮤지컬엔 뮤지컬을 위한 창법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한류 스타라지만 연출가나 음악감독이 그의 배역에 맞도록 왜 창법을 수정시키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준수의 가창력과 음악성은 정평이 나 있다. 시키면 못 따라올 가수가 절대 아닐텐데 말이다.
김준수와 홍광호의 듀오 '넘버'에서도 화음은 도드라지지 않았다. 풍부한 성량의 바리톤 음색인 홍광호와 가는 쇳소리가 나는 김준수의 목소리는 각각 따로 놀았다. '미스 캐스팅'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뮤지컬은 20대 이후 세대가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이라는 어느 평론가의 독설이 떠올랐다.
그럴 의도도 물론 없지만, 이런 악평이 이 공연의 흥행에 솜털만한 악영향이라도 끼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티켓 예매 때마다 이내 매진된다고 한다. 아이돌을 향한 '팬심'의 위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물론 타인의 이런 취향 자체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팬심이 없는 관객 입장에서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그렇다고 이 공연 자체가 나빴던 건 결코 아니다.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이름을 적으면 사람이 죽는' 노트의 이야기는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수많은 방송에서 패러디됐을 정도니. 그만큼 이야기 자체가 재밌다.
원작 만화를 봤다 해도 만화 속 이야기들을 실제 무대에서 연기로 표현하는 배우들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원작 만화를 안 봤다면 공연은 더 재밌어질 가능성이 크다. 두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는 흠 잡을 곳이 별로 없었다.
특히 사신(死神) '류크' 역의 강홍석은 대단했다. 영화 '영웅본색'에서 적룡과 장국영이 주인공인데도 정작 주윤발이 도드라졌던 것처럼, 강홍석은 두 주인공 대신 이 공연을 끌고 나가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또 다른 사신 '렘' 역을 맡은 박혜나의 노래와 연기도 멋졌다.
특히 노래만큼은 '미사' 역의 정선아가 빛났다. 별 특징없는 주인공들의 넘버와 달리 미사가 부르는 노래들은 신났고, 아름다웠고, 극적이었다. 팬덤에 불타는 '여성 회전문 관객'이 주 수요층인 뮤지컬은 확실히 여배우에겐 상대적으로 불리한 공연 장르라는 생각이 들었다.
뮤지컬 '데스노트' 자체는 장기 공연할 히트작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어차피 팬층이 두터운 두 주연배우 덕에 당분간 예매가 쉽진 않을 것 같다. 두 배우의 팬이 아니라면, 주인공이 바뀐 이후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오는 8월 15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5만~14만원. 1577-3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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