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의 행복한 '외도'

클래식 소개 프로그램 MC 맡아, "사람들이 클래식 어려워 않도록 많은 얘기 나누고파"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 (C)Sangwook Lee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차라리 콩쿠르를 준비할 때가 지금보다 쉬웠어요. 자려고 누워도 방송이 떠올라서 자꾸 뒤척여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28, 본명 신현수)는 300장이 넘는 A4용지 출력물을 보여주며 "다음 녹화용 대본과 출연 연주자들의 인터뷰 기사, 당일 연주곡에 대한 연구논문"이라고 설명했다.

"다 읽느냐"고 묻자 그는 "4회차까지 녹화했는데 이제까지 빠트리지 않고 매회 분량을 다 읽었다"고 대답했다. 신지아는 지난 3일부터 클래식을 소개하고 연주자들과 대담하는 KBS 1TV '더 콘서트'의 새 MC를 맡았다.

프랑스 롱티보 국제콩쿠르 우승,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3위 등 세계적 콩쿠르에서 이름을 알린 신지아는 유학 경력 한 번 없는 '순수 국내파'로 김선욱, 손열음과 더불어 한국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젊은 연주자다. 아울러 그녀는 바이올린계의 대모 김남윤 한국예술영재교육원장이 길러낸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 중에 맡언니 격이다.

꽉 짜인 연주 일정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애제자가 방송 일을 시작하자 김남윤 원장이 나무라지 않았냐고 묻자 신지아는 "연주 때문에 노르웨이에 갔었는데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때가 마침 스승의 날이었거든요. (방송 일을) 말씀드렸더니 열심히 하라고 조목조목 일러주시며 응원해주셨어요"라고 말했다.

신지아가 MC로 데뷰했던 지난 3일 첫무대에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그와 인터뷰하던 피아니스트 백혜선 서울 음대 교수가 스승 러셀 셔먼의 일화를 애기하다가 울음을 터트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신지아는 긴장된 그 상황에서 "선생님 얘기를 하다보면 저도 왈칵 울음이 쏟아지거나 그냥 먹먹해진다"며 백혜선 교수를 차분하게 위로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신지아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려는 거예요. 사회자가 중심을 잃으면 안 되잖아요. 꾹 참고 진행했어요"라고 설명했다. 단 한번의 연주를 위해 평균 400시간을 연습해야 하는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교감이었다.

매회 녹화를 위해 단행본 3권 분량을 새롭게 공부하는 그녀의 노력은 핵심을 찌르는 질문으로 빛난다. 지난 10일 2회차 방송에서 신지아는 아벨 콰르텟에게 "일반적인 콰르텟의 자리배치가 바이올린-바이올린-비올라-첼로인데 반해 독특하다"고 물었다. 바이올린-첼로-비올라-바이올린으로 자리를 배치한 아벨 콰르텟은 자신들이 고전주의 시대의 악기 배치를 가져왔다고 대답했고 관객들은 음악적 지식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었다.

신지아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음악 얘기를 방송에서 나누고 싶다고 희망했다. 더 많은 대중들이 클래식을 어려워하지 않고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모든 이가 행복해지길 원했다. 그녀가 지난 2회분의 방송에서 가장 많이 말한 단어가 '행복'이었다.

콩쿠르라는 경쟁의 틀에서 전력질주로 연습에 매달렸던 그녀가 막상 놓쳤던 것이 바로 '행복'이었다. 2008년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 우승 이후 그녀에게 갑자기 슬럼프가 덮쳐왔다. 당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마음 먹은 대로 연습이 되지 않았다. 악기를 붙잡고 우는 날이 많아졌고 '이런 게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이 그녀를 괴롭혔다.

신지아는 행복하게 살겠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이름부터 신현수에서 신지아로 바꿨다. 그리고 경쟁하는 음악이 아니라 공감하고 소통하는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다시 그녀는 바이올린 연주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디토페스티발에서 슈베르트를 선보인 그녀는 당분간 중국을 오가며 독주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한 9월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파크콘서트에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과 협연을 준비중이다.

악보와 방송 준비자료 외에도 그녀의 가방에서 책 한 권이 보였다. 이제이북스에서 출간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었다. 이 책은 인간이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를 묻고 대답하는 고전 철학책이다. 삶을 대하는 관점을 싹 바꿨지만 신지아가 아직도 못 버린 것이 2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태도이고 둘째는 그동안 쌓아온 연주실력이다. 아마 그녀가 평생 못 버릴 습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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