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도전하는 모든 이들은 항상 아름답다…'그램 머피의 지젤'

'그램 머피의 지젤'중 2막 장면 (사진제공 유니버셜발레단)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코리안 지젤! 첫 미팅에서 머피의 첫마디였죠. 순간 소름이 돋았어요."

'그램 머피의 지젤'을 관람하면서 문훈숙 유니버셜발레단 단장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호주 시드니 댄스 예술감독으로 31년간 재직한 그램 머피는 호주 문화계에서 인간문화재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자신이 이뤄놓은 성과에 안주하고 살아도 이미 충분할 만큼 성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머피는 도전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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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 단장에게 홀로그램을 활용해 새로운 지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공연장의 사정으로 홀로그램을 사용하지 못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지젤을 창조해냈다. 먼저 음악이다. 그램은 음악을 바꿔야 새로운 춤동작이 탄생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머피는 크리스토퍼 고든(Christopher Gordon)에게 자신의 구상을 충분히 설명한 뒤 전권을 맡겼다. 고든은 장구·꽹과리·징·목어 등 한국 전통악기를 새로 공부해 오케스트라에 어색함 없이 녹여냈다. 아니 국악기와 합쳐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강렬했다. 서양악기의 음률에 세산조시, 엇모리, 중중모리 등 국악장단이 끼어들자 등장인물간의 갈등이 증폭됐다.

고전 재창작을 많이 해온 머피에게도 발레음악을 바꾼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젤'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낭만발레를 대표하는 3대 고전이다. 머피는 국악기 음색이 들어와 갈등을 부추기는 음악에 맞춰 지젤 이야기의 큰틀만 남기고 갈등의 개연성을 강화시켰다. 원작에 없는 지젤의 부모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윌리들의 여왕인 미르타는 난데 없이 등장한 악령이 아니라 지젤의 아버지 울탄에게 버림받아 그렇게 된 것으로 개연성을 강화시켰다.

머피는 2막에서 남자에게 버림받은 윌리들이 알브레히트를 보다 격렬하게 파괴하게끔 안무를 짰다. "악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머피는 말했다. 그의 창조적인 도전 정신은 문 단장의 오랜 숙원을 이뤄냈다. 한국 무용수의 가량이 세계적임에도 아직까지 한국 발레계가 외국 작품을 공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까닭을 문 단장은 고전발레를 새롭게 재창착한 고유한 작품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램 머피의 지젤 (사진제공 유니버셜발레단)

그램 머피가 한국적 색채를 입힌 고전발레 '지젤'은 파란눈의 시각으로는 충분히 한국적이겠지만 막상 우리가 봤을 때는 무대가 어색했다. 머피의 요구를 무대디자이너 제라드 마뇽(Gerard Manion)은 수묵화에서 열쇠를 찾은 듯 하다. 1막에서 안개가 낀 산수화를 표현한 무대배경은 2막에서도 안개가 낀 소나무 숲속으로 공간을 옮겨왔다.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무대를 연출하다보니 1막 시작부터 2막 끝까지 포그머신이 계속해서 안개를 뿜어댔다. 이것은 세계 초연인 '그램 머피의 지젤'에서 결정적 실수였다. 안개는 글리세린계 오일을 뜨거운 압축공기로 기화시켜서 만들어진다. 자꾸 품어대면 무대 바닥이 미끄러워진다는 얘기다. 몸동작이 무용보다 덜 격렬한 연극에서도 안개를 대량으로 품어낸 다음에는 오일성분의 안개가 무대바닥에 달라붙지 않도록 송풍기를 돌려서 재빨리 걷어낸다. 배우가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안개가 집중된 1막에서는 출연진들이 토우슈즈를 벗고 춤을 췄지만 어딘가 동작이 위축됐다. 무용수들이 아이스링크에서 춤을 추는 기분이겠거니 싶어서 관람하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20분간의 쉬는 시간은 무대바닥에 낀 오일을 완벽하게 닦아내기엔 부족한 시간이었다. 결국 2막 도중에 수석무용수 황혜민이 미끄러졌다. 당황스러운 상황임에도 그녀는 평정을 되찾고 무대에서 완벽한 아름다움을 구현했다.

그램 머피의 최초의 바람대로 이 공연이 홀로그램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문 단장의 지향점과 그램 머피의 식지않는 도전정신은 우리가 큰 박수로 응원해야 마땅하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거기에 머물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머피가 아니더라도 도전하는 모든 이들은 항상 아름답다.

17일까지. 1만~10만원. 문의 (02)580-1300.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