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훈숙 "우리만의 신작과 안무가 발굴해야"
"전통 이을 다음 30년을 위한 준비…원칙 지키는 것이 중요"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항상 같이, 최고가 아니면 용납 안해"
"무용수 병역, 민간발레단 활성화, 은퇴 무용수 지원 등 과제"
- 염지은 기자
(서울=뉴스1) 염지은 기자 = "지금까지 만들어 낸 30년 전통을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끊기지 않고 미래 후배들에게 연결할 지 그런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 30년을 위해 잘한 것도 있지만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서 가야되지 않겠나 한다."
한국발레 역사와 함께 해온 유니버설 발레단이 올해로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1984년 5월 12일 한국 최초의 민간 직업 발레단으로 창단된 유니버설 발레단은 발레의 불모지인 우리나라를 발레의 메카 반열에 올려 놓았다.
중심에는 영원한 지젤 문훈숙 단장(52)이 있다. 문 단장은 창단 30주년을 맞은 기쁨보다 다음 30년을 위한 생각으로 분주했다. 프리마돈나에서 CEO로 변신한 문 단장을 9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실에서 만났다.
-요즘 근황은.
▶2월에 30주년을 축하하는 갈라공연 올렸다. 갈라 형식의 공연은 많이 안했었는데 그 정도 규모의 공연은 처음이었다. 30주년을 총 결산하는 공연이 됐던 것 같다. 클래식 발레부터 드라마 발레, 창작 발레, 모던 발레까지 발레 발전사를 한 공연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4월엔 멀티플리시티라는 전막 모던 발레를 했다. 처음으로 모던 발레 전막공연을 엘지아트센터에서 올렸는데 역시 반응이 너무 좋았다. 나초 두아토라는 세계적 발레가의 바하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이었는데 모두가 극찬을 했다. 천재적인 안무가다. 굉장히 좋은 작품을 레퍼토리로 하나 얻은 게 큰 수확이다. 무용수들도 그 작품을 통해 굉장히 많이 성장했다. 세월호 사건 직후라 조심스럽게 무대에 올렸는데 다행히 좋게 봐주셨다.
5월엔 지젤 지방 공연을 돌고 이번주에 예술의 전당에 6년만에 지젤을 무대에 올린다. 특히 강미선, 김채리, 이용정 3명의 새로운 지젤이 탄생되는 공연이어서 뿌듯하다. 알브레히트도 이동탁 수석무용수가 초연이다. 이승현 무용수는 일본에서 지젤을 했지만 서울에서는 초연이다. 새로운 젊은 무용수들이 3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주역 반열에 서는 계기가 된 것 같다.
-30주년을 맞는 소감은.
▶유니버설발레단의 30년은 한국발레 역사의 30년하고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 분야를 개척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 기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다.
특히 그 동안 발레단이 이렇게 오는데 있어 함께 한 많은 분들이 있다. 그 분들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 없는 30년이었다. 몸담고 있는 단원이나 거쳐 간 단원과 직원들, 해외에서 오셔서 도와 준 많은 안무가 선생님들이 계신다. 무엇보다 문선명 설립자께 감사한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믿음과 후원 없이는 오늘의 발레단이 없기 때문에 30년 온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다.
-다음 30년을 위한 준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1992년 마린스키발레단의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예술감독님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해 달라고 했더니 '너희 발레단은 수준이 안돼서 못한다'고 했다. 그런 상태에서 무용수들의 기량, 작품의 수준, 의상, 장치, 조명 등 보여지는 외형의 공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30년이었다.
이제 보여지는 무대는 좋아졌지만 내부 조직으로 일하는 프로센스가 좀더 세련될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일하는 프로세스를 좀 더 효율적으로 하려 한다. 모든 게 소통인 것 같다.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서 문제점이 많이 발생한다. 공연을 올리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들을 정비해 조직이 좀더 스마트하고 세련되게, 그래서 모든 구성원이 좀 더 보람을 느끼는 발레단을 만들고자 하는 게 올해 주 과제다.
-CEO 역할을 말씀하시는 것 같다.
▶CEO라고 하면 부담스럽다. 자리는 CEO가 맞긴 맞는데 아직도 CEO라는 타이틀이 어색하고 거창하다는 느낌이다. 은퇴한 지 13년이 됐는데 춤을 출 때는 솔직히 무대가 우선일 수 밖에 없었다. 단장이라는 직함은 갖고 있었지만 솔직히 제대로 많이 못했던 것 같다. 은퇴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는) 너는 그만큼 춤췄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이 다른데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발레단이 돌아가는 것은 나 혼자 힘으로 가는 게 아니다. 가능하면 귀를 열어 놓는다. 직원도 파트너다. 직원들이 나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많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 열린 생각으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30년 동안 오면서 체계가 안잡힌 부분은 체계를 잡아가고 있다.
20, 30년 같이 온 사람들이 없더라도 그런 전통들의 체계가 시스템화돼서 자리잡힌다면 사람이 바뀌어도 발레단은 전통을 잃지 않고 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계속 갈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게 CEO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10년 후에 내가 없고 다른 사람이 운영할 때 내가 있을 때보다 잘 돌아가게끔 준비를 하는 게 제 역할인 것 같다. '문훈숙 선생님 있을 때보다 다음 사람이 더 잘하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
-유니버설발레단만의 전통이라면. 또 스타일은.
▶고전 클래식 작품들이 마린스키 발레단의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것은 정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1992년부터 22년 동안 같이 작업하면서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받기는 받았지만 예술이라는 것은 입에서 입으로, 몸에서 몸으로 기록을 남긴다 하더라도 가르치는 사람이 그것을 모르면 그 전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스타일이라는 것은 시선, 팔동작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어떤 방법으로 하는 작은 디테일에서 나온다. 그런 것들은 한눈을 팔면 금새 없어진다.
또 다른 전통은 유니버설발레단의 정신이다. 항상 같이 간다는 것과 최고를 고집하고 최고가 아닌 것은 용납하지 않는 그런 정신이다. 발레단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다.
유니버설발레단만의 스타일은 세련된 느낌이 강하고 섬세하다. 고풍스럽다.
-발레단 경영철학은.
▶경영에 대해 철학을 말하기에는 설익은 것 같다. 철학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한 것 같고 그냥 생각고 한다면 일단은 공과 사가 분명해야 한다. 항상 개인의 입장이 아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또는 누구 한사람을 생각하면 안되고, 누구 하나를 위해도 전체가 같이 공감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변치않는 법칙들이 있다. 자연을 지배하는 법칙 중 하나는 뭘 놓으면 밑으로 떨어지는 거다. 우주의 법칙이 있듯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도 원칙과 법칙이 있다. 100%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보니 실수를 하게 되지만 가능한 그런 원칙들을 지키면서 운영하려고 한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지키고 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창작 발레를 무대에 올리는 이유는. 해외에서의 반응은.
▶'심청'은 초대 예술감독이 했다. 우리 나라 전통에 '심청', '춘향', '흥부놀부'가 있는데 부모 사랑, 부부 사랑, 형제 사랑 3애가 다 들어 있다. 3부작으로 만들면 내 숙제가 끝나겠다는 생각이 예전부터 있다. 옛부터 온 아름다운 정신, 가치관이 현 세대에서 굉장히 필요하다. 세월호 문제도 가치관의 혼란에서 오는 거다. 한국이 잘사는 나라가 됐지만 그런 가치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외적인 것보다 내면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해야 겠다는 것이 세월호를 통해 빨간 볼펜으로 밑줄쳐지는 사건이었다.
아주 심플한 스토리지만 그 안에는 3애 사상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해서 '춘향'을 2007년 전막으로 올렸다. 9월에 다시 올리는 데 보완해서 준비하고 있다. '흥부놀부'는 '춘향'을 좀더 완성시킨 다음에 올릴 생각이다. 우리가 아무리 고전 클래식 갖고 있어도 우리만의 지문이 묻어 있는, 유니버설발레단만의 고유 작품이 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청'은 2011년 오만 로열 오페라 하우스 객원 공연에 세계 톱 클래스인 아메리칸 발레 씨어터, 라스칼라, 마린스키 발레단과 함께 초청됐다. 매번 보는 백조의 호수, 지젤이 아니어서 색다르고 좋다고 해서 선택됐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특히 외국인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춘향도 내년 오만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다.
-발레 한류의 가능성은.
▶꼭 고전을 다루지 않더라도 우리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다룬 작품들이 필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만의 안무가 발굴이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그런 안무가들이 있어서 독특한 작품들이 나온다면 더욱 한류가 좋을 거라는 생각이다. '춘향', '심청'은 전막 발레 공연인데 앞으로는 현대 작품에도 한국적인 요소들을 가미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발레의 과제는.
▶한국적인 신작과 함께 안무가 발굴이 중요하다. 안무가들이 나올 때가 됐다. 그동안 길러낸 무용수들이 세계무대에서 경험을 하고 은퇴하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한예종의 김용걸, 조주현 교수님이 안무를 하고 계시는데 이 분들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국내에서 안무가로 변신했다. 그런 분들이 많아질수록 천재적인 안무가가 나올 확률이 더 높아진다. 한국발레가 그동안 기반이 없어 안무가가 나올 수 없었는데 이제는 토양이 만들어졌다.
또 아무래도 병역 문제가 영원한 숙제다. 사실 발레의 경우 35살 정도 되면 은퇴해야 한다. 다른 장르와 똑같이 취급되는 것은 맞지 않다. 현대 무용, 한국 무용, 국악은 병역 후에도 할 수 있다. 60세가 넘어도 할 수 있는 예술이다. 발레 장르만큼은 같은 기준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이 풀리지 않는 과제여서 굉장히 속상하다.
선화중고에서 발레 무용수 20명을 뽑으면 한 학년에 남자는 1~2명뿐이다. 운이 좋으면 3명이다. 그렇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유니버설 단원 67명중 24명의 남자 단원이 있는데 반은 외국인이다. 국내에 남자 발레 무용수가 없어 데려온 것이다.
발레 무용수 병역 문제는 특수상황인 것을 이해해 줬으면 하는데 법이 계속 바뀌고 있다. 국제콩쿨에서 금상 아니면 은상을 타야 병역이 면제되는데 하늘의 별따기다. 그것도 점수제로 바꿔서 줄이려 하고 있다. 발레하지 말고 군대 가라는 얘기다. 발레 시장을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 민간 발레단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 국립과 민간단체의 균형적인 지원이 돼야 한다. 미국은 미국 전역에 10~20명 규모의 민간 지방 발레단이 굉장히 많다. 소규모 발레단이지만 많은 활동을 하고 거기서 많은 창작이 나온다. 작은 곳에서 창작활동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안무가들이 큰 발레단에 와서 안무를 하기도 한다. 무용수들이 은퇴 후 갈곳도 많다. 안무가로도 갈 수 있고 작은 발레단으로도 갈 수 있다. 이런 인프라가 한국발레 발전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민간의 경우 유니버설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 정도만 운영이 되고 있다. 다른 민간 발레단은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방 공연장이 상당히 많은데 지방 극장들의 상주단체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 구조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 지자체가 나서고 민간 후원도 있어야 한다.
-무용수들의 정년 이후 활동은.
▶해외에는 무용수직업전환센터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생겼는데 토론하고 출발하려다 보니 한국에서는 현재 먹고 살기 힘들어 은퇴는 생각도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직업전환' 이름이 한국에서 맞지 않아 전문무용수지원센터라고 했다. 직업전환을 도와주는 부분도 있고 복지도 도와주는 기관이다.
외국의 경우는 일정기간 프로 무용수 활동을 하고 이 단체에 가입하면 은퇴 후 퇴직연금을 받는다.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발레단에 입단해 대학 졸업증이 없어 재교육이 필요하다. 많은 무용수들이 이 기관의 지원을 통해 심지어 의사. 변호사. 사업가. 물리치료사 등 다양하게 직업 전환을 하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자문을 해준다. 무용수들은 어릴 때부터 무용만 해서 무용이 단순한 직업만이 아니고 아이덴티티다. 그래서 많은 무용수들이 은퇴 후 정체성에 대한 혼란, 불안감이 많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를 겁낸다. 프로 무용수를 할 수 있는 열정, 의지, 강인함이라면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다고 자문해준다.
전문무용수지원센터를 통해 은퇴 무용수를 많이 지원해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무용수들이 부상을 당하면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물리치료인데 물리치료가 보험처리가 안된다. 장기 부상일 경우는 발레단에서 월급을 계속 줄 수도 없다. 센터에서 보험처리가 안되는 것까지 지원해주는데 무용수들에게 정말로 필요하다. 직업전환에 대한 지원도 전문무용수지원센터를 통해 해줬으면 한다.
<문훈숙 단장은> △1963년 1월 25일 미국 출생 △모나코왕립발레학교·워싱턴 유니버설 발레학교 졸업, 선문대학교대학원 무용예술학 박사, 모스크바 국립예술대학 무용예술학 명예박사 △1982년 미국 워싱턴발레단 솔리스트 △1984년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1995년~유니버설발레단 단장 △1998년 한국발레협회 이사 △2000년 모스크바 민족회의 명예친선대사 △2004년 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2006년 USA 국제발레콩쿠르(잭슨 콩쿠르) 심사위원 △수상-1996년 한국발레협회 '프리마발레리나상', 1999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대한민국 문화예술상', 2010년 '화관문화훈장', 2011년 '경암학술상', 2012년 국제공연예술협회 '최고 경영자상'·한국발레협회 '발레CEO상'
senajy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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