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자살위험, '얼마나 우울한가'보다 '뇌가 어떻게 연결됐는가'
아동기 방임 경험과도 연관…자살 고위험군 조기 선별 가능성
한규만 고대 안암병원 교수팀, 우울장애 환자 분석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주요우울장애 환자 가운데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 뇌에서 정보를 해석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핵심 회로의 연결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살 위험을 단순히 우울 증상의 강도로만 설명하기보다, 뇌 신경 네트워크의 구조적 차이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규만·함병주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주요우울장애 환자 123명과 대조군 81명을 분석한 결과, 특정 뇌 영역 간 기능적 연결성이 낮게 나타났다고 21일 밝혔다.
분석에는 휴지기 기능적 자기공명영상(resting-state fMRI)이 사용됐으며, 임상 정보와 함께 아동기 외상 경험 설문지(CTQ) 결과도 함께 반영됐다. 휴지기 fMRI는 특정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상태에서 뇌 각 영역이 얼마나 동시에 활성화되는지를 측정해, 뇌 영역 간 '기능적 연결성'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이는 뇌가 정보를 어떻게 통합하고 조절하는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된다.
그 결과,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주요우울장애 환자들은 정상 대조군에 비해 시각피질과 전두엽 사이의 기능적 연결성이 유의하게 낮았다. 자살 시도 경험이 없는 주요우울장애 환자군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지 않았다.
시각피질은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해석하고, 과거의 기억과 정서적 경험을 토대로 장면이나 이미지를 재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전두엽은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고 감정을 조절하며, 충동을 억제하는 데 관여하는 영역이다. 두 영역 간 연결이 약해질 경우, 인식된 정보가 전두엽으로 원활히 전달되지 못해 감정 조절과 판단 과정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연구진은 이 같은 결과가 자살 시도를 단순한 우울 증상의 악화로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자살 위험이 높은 환자군에서는 정보를 인식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신경 회로 자체의 작동 방식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동기 경험과의 연관성도 함께 확인됐다. 연구팀은 아동기 신체적 방임 경험 점수가 높을수록 시각피질과 전두엽 사이의 기능적 연결성이 더 약해지는 경향을 관찰했다. 이는 어린 시절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한 경험이 뇌 기능 회로 발달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고, 일부 주요우울장애 환자에서 자살 시도 위험을 높이는 신경생물학적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규만 교수는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우울증 환자들은 단순히 증상이 더 심한 집단이라기보다, 정보를 인식하고 해석하며 감정을 조절하는 뇌 연결 구조의 차이를 보이는 집단일 수 있다"며 "아동기 방임 경험이 뇌 네트워크 발달과 연관돼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를 바탕으로 자살 고위험군을 보다 이른 시점에 선별하고, 맞춤형 예방 전략을 세우는 데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결과가 자살 위험을 뇌영상만으로 예측하거나 개인을 낙인찍는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임상 평가 과정에서 병력, 증상, 환경 요인과 함께 신경생물학적 취약성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표본 수가 제한적이고, 횡단적 분석이라는 한계가 있다. 뇌 연결성 변화가 자살 시도의 원인인지 결과인지를 단정할 수는 없으며, 약물 치료나 증상 경과에 따른 변화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진은 향후 장기 추적 연구를 통해 뇌 네트워크 변화가 자살 위험의 경과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치료 개입이 이러한 연결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추가로 검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연구 결과는 미국 신경정신약물학회(ACNP) 공식 학술지인 신경정리약리학회지 'Neuropsychopharmacology' 1월 호에 게재됐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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