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늘려도 모자랐다…키운 영국 전문의는 왜 부족해졌나[김규빈의저널톡]
마르코프 전이 모델로 인력 모델 추정
2048년 전문의 공백 최대 1만 3000명 추정…확대 효과는 제한적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장기적인 전문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의대 입학부터 수련, 근무, 이탈까지 전 과정을 함께 보지 않으면 증원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으며,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오히려 인력 공백이 지속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영국 샌드웰·웨스트버밍엄 NHS 트러스트 연구진이 2023년 영국 의사 교육 데이터베이스 등을 기준으로 2048년까지 전문의 인력 분석을 추정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8일 밝혔다. 연구진은 의대 입학, 기초 수련, 전문과 수련, 전문의 취득, 근무 지속, 이탈 등 각 단계를 하나의 상태로 설정해 인력 이동을 계산했다.
연구진은 마르코프 상태 전이 모델을 사용했는데, 이는 매년 일정 비율의 인력이 다음 단계로 이동하거나 의료 현장을 떠난다고 가정해 장기적인 인력 흐름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즉, 의사가 교육과 수련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얼마나 남고, 어디에서 빠져나가는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산한 모델이다.
연구진은 NHS의 전문의 부족 문제를 단순한 '현재 인력 부족'이 아니라, 의대 입학부터 수련, 근무, 이탈까지 이어지는 장기 구조 문제로 분석했다. 향후 25년간 전문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예측해, 어떤 정책 개입이 실제로 인력 격차를 줄일 수 있는지를 수치로 제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력 규모는 전일제 환산 기준(WTE)으로 산출됐다. 이는 실제 인원수가 아니라 시간제·부분 근무를 고려해 전일제로 환산한 실질 노동력을 의미한다. 최근 전문의의 근무 형태 변화가 인력 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기 위한 지표다.
그 결과, 의료 수요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고수요 시나리오를 적용할 경우 2048년 NHS 전문의 인력은 약 1만 10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로 진료 수요가 많이 늘어나는 상황을 가정한 결과다.
의대 정원 확대 효과를 반영한 시나리오에서도 격차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의대 입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31년까지 연간 1만 7000명 수준으로 늘리고, 동시에 수련 단계에서의 이탈을 줄이는 정책을 병행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그 결과 전문의 부족 규모는 줄었지만, 여전히 약 5000명 수준의 인력 공백이 남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근무 형태 변화와 인력 이동까지 반영하면 격차는 다시 확대됐다. 전문의의 시간제·부분 근무 비율 증가를 가정할 경우 부족 인력은 약 1만 3000명으로 늘어났고, 해외 의사 유입을 줄이는 시나리오에서는 부족 규모가 약 1만 5500명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의대 증원 효과가 실제 진료 현장에 반영되기까지 상당한 시간 지연이 발생한다는 점이 이러한 결과의 핵심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이 단순한 인력 '총량' 예측이 아니라, 교육–수련–근무 전환 과정 전체를 반영한 구조적 추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의대 입학 확대 효과는 최소 10년 이상이 지나야 전문의 인력으로 전환되며, 그 사이 의료 수요는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전문의 부족 또한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전문의 인력 공백은 응급실 체류 시간 증가, 대기 명단 확대, 병상 회전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는 의료 생산성 정체와 환자 안전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연구진은 수련 과정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수련 단계에서 중도 이탈을 줄이고 충분한 수련 포스트를 제공하는 것이 전문의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이는 단순히 의사를 더 선발하는 문제가 아니라, 선발된 인력이 끝까지 수련을 마치고 현장에 남아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외 의사 유입 역시 단기적으로는 중요한 완충 장치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외 인력 의존을 고착할 수 있어 오히려 공백을 키울 수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러한 결과를 다른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제도적 차이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의과대학 교육과 수련 과정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공공 인력 양성 체계에 가깝다. 반면 국내 의과대학 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개인이 부담하는 구조로, 의사 인력 확대의 비용과 책임이 국가가 아닌 개인에게 먼저 전가되는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전문의 수급 문제는 국가가 투자해 양성한 인력이 얼마나 의료 현장에 남아 일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지만,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부담한 교육 비용을 감수하고도 의료 현장에 남아 있을 유인이 충분한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연구진이 강조한 수련 유지율과 근무 지속성은 구조 차이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중요한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The Lancet Regional Health–Europe'(랜싯 지역보건-유럽) 9월 호에 게재됐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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