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00년 전 냉동인간 '외치' 발견 [김정한의 역사&오늘]
1991년 9월 19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91년 9월 19일,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걸친 외츠탈 알프스산맥 해발 3210m 고지대의 빙하가 녹아내린 틈에서 엎드려 있는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빙하 속에 갇혀 있던 시신은 기원전 3300년경의 시대를 살았던 5300년 전 인류였다.
시신이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 '외치'(Ötzi)라는 별칭이 붙은 이 냉동 미라는 자연 냉동 건조 덕분에 피부와 장기, 심지어 뇌 조직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었다. 볏짚을 엮어 만든 외투와 곰 가죽 모자, 사슴 가죽 신발을 완벽히 갖춰 입고 있었고, 곁에는 고순도 구리 도끼와 주목나무 활, 화살통이 놓여 있었다.
부검 결과 사망 당시 45세 전후였던 외치는 키 약 160㎝에 체중 50㎏ 남짓이었으며, 전신에 61개의 십자 및 선 모양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위장 속 내용물을 분석하자 야생 염소 고기와 붉은사슴 고기, 원시 밀 형태의 곡물가루가 고스란히 쏟아져 나와 5000여 년 전 수렵 채집민의 식단이 생생히 입증됐다.
외치의 사인은 타살이었다. 컴퓨터 단층촬영(CT) 판독 결과 왼쪽 어깨 뒤편에서 폐동맥을 찢고 박힌 부싯돌 화살촉이 포착됐다. 치명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쓰러진 뒤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두개골 골절을 입은 정황도 드러났다. 숨지기 직전 누군가와 처절한 육탄전을 벌인 흔적도 드러났다.
발견 직후 소유권을 둘러싼 외교적 쟁탈전도 벌어졌다. 시신이 오스트리아 국경선에서 불과 92.56m 떨어진 이탈리아 영토 내에 위치했던 탓에 정밀 측량 끝에 소유권은 이탈리아로 귀속됐다. 현재 외치는 영하 6도, 습도 98%로 유지되는 이탈리아 볼차노의 남티롤 고고학 박물관 특수 냉동실에 안치돼 있다.
외치의 발견은 단순한 고대 유물 발굴을 넘어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전환되던 시기 인류의 생존과 갈등, 죽음의 순간을 가감 없이 증언한다. 산 정상 부근에서 추격자를 피해 도주하다 비참하게 쓰러졌던 한 인간은 5300년이 지난 가을날 인류 문명사 한가운데로 극적으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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