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되기를 꿈꿨던 청말 군벌 위안스카이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59년 8월 20일

위안스카이. (출처: Sir Alexander Hosie (1853-192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59년 8월 20일, 청나라 말기 군벌이자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을 지낸 위안스카이(袁世凱)가 허난성 샹청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통 제국의 몰락과 근대 공화정의 격변기 한가운데서 군사력과 권모술수를 바탕으로 최고 권력에 오른 인물이다.

젊은 시절 과거 시험에 연이어 낙방한 그는 군문에 투신했다. 타고난 상황 판단력과 과감한 행동력으로 양무운동의 거두 이홍장의 눈에 띄면서 본격적인 정치적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는 1882년 조선에서 발생한 임오군란 당시 군대를 이끌고 개입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갑신정변을 무력으로 진압한 뒤 조선 주재 총리아문 통상신의로 부임해 사실상 총독처럼 행세하며 청나라의 종주권을 과시하고 내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귀국 후에는 서양식 신식 군대인 북양신군을 창설해 막강한 군사적 기반을 다졌다. 이 군대는 훗날 중국 군벌 정치를 좌우하는 '북양군벌'의 강력한 모태가 됐다.1898년 무술변법 개혁파의 거사 계획을 서태후 측에 밀고해 보수파의 신임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청 황실 내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며 실권을 장악해 나갔다.

1911년 신해혁명이 터지자 그는 혁명 세력과 청 황실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벌였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의 퇴위를 이끌어내는 조건으로 쑨원으로부터 임시대총통 직을 넘겨받아 1912년 중화민국 초대 정식 대총통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권력욕은 공화정에 머무르지 않았다. 1915년 제정 복고를 획책해 이듬해 스스로 황제(홍헌제)에 올랐으나, 전국적인 반대 운동과 각지 군벌들의 반발(호국전쟁)에 부딪혀 83일 만에 제위를 철회해야 했다.

위안스카이는 정치적 고립과 실의 속에서 1916년 6월 6일 요독증으로 숨을 거뒀다. 그가 남긴 군사적 파벌은 훗날 중국 전역을 혼란으로 몰아넣은 군벌 할거의 기원이 됐다. 그는 근대 전환기 과도기의 비운과 맹목적 야망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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