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피를 인간에게 주입한 인류 최초의 유인 수혈 [김정한의 역사&오늘]

1667년 6월 15일

장 바티스트 드니 (출처: Spiessen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667년 6월 15일 프랑스 파리, 국왕 루이 14세의 주치의였던 장 바티스트 드니(Jean-Baptiste Denis) 박사가 의학 역사상 가장 기상천외하고 위험천만한 실험을 감행했다. 인간의 몸에 동물의 피를 직접 주입하는 '인류 최초의 유인 수혈'이 이루어진 날이다.

실험의 첫 대상은 열병을 앓다 반복된 방혈(치료 목적으로 피를 뽑는 행위)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진 15세 소년이었다. 드니 박사는 소년의 정맥에서 약 3온스의 피를 뽑아낸 뒤, 순하고 깨끗하다고 여겨진 새끼 양의 경동맥에서 추출한 혈액 약 9온스를 소년의 몸에 강제로 주입했다.

이는 현대 의학의 관점에서는 치명적인 급성 용혈성 쇼크를 유발해 즉사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모한 행위였다. 당시는 혈액형의 존재는커녕 수혈의 기본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질병의 원인이 체내의 '나쁜 피'에 있다고 믿던 당대의 의학적 맹신이 낳은 극단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소년은 심한 발열 반응과 극심한 고통을 겪은 후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후대 의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시 드니 박사가 사용한 수혈관이 조잡하고 기술이 서툴러 실제 소년의 체내로 흘러 들어간 양의 피가 면역계를 완전히 붕괴시키지 않을 만큼 극소량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첫 실험의 성공에 고무된 드니 박사는 이후 다른 환자들에게도 이종(異種) 수혈을 이어갔다. 하지만 '앙투안 무루아'라는 환자가 수혈을 받은 후 전신 발작을 일으키며 사망했다. 드니 박사는 결국 살인 혐의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됐다. 그는 재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 기괴하고 치명적인 실험의 파장은 전 유럽을 뒤흔들었다.

결국 1670년 프랑스 의회와 파리 의학회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 모든 수혈 행위를 법으로 전면 금지했다. 영국 왕립학회 역시 동조하면서 인류의 수혈 연구는 이후 약 150년 이상 암흑기에 접어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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