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중증 장애를 극복한 활동가 헬렌 켈러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68년 6월 1일

헬렌 켈러. (출처: Bain News Service, publisher, 1913,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8년 6월 1일, 시각과 청각을 모두 잃은 중증 장애인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작가, 활동가, 교육가로 활동한 헬렌 켈러가 87세를 일기로 웨스트포트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삶은 장애 극복이라는 개인적 신화를 넘어 사회 구조적 모순에 맞선 혁명가의 여정이었다.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만에 성홍열로 추정되는 질환을 앓아 빛과 소리를 잃었다. 그러나 7세 때 평생의 스승인 앤 설리번을 만나며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설리번의 헌신적인 교육을 통해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방식으로 언어를 습득했고, 배움에 눈을 떳다.

그는 명문 래드클리프 대학(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해 1904년 시청각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인문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재학 중 출간한 자서전 '내 삶의 이야기'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는 평생 동안 10편이 넘는 저서와 수많은 논설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헬렌 켈러는 사회 개혁 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인식한 그는 미국사회당에 입당해 노동자의 권리 신장과 아동 노동 철폐를 주장했다. 특히 장애와 빈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간파하고, 빈곤층의 보건 환경 개선과 시각장애 예방 운동을 주도했다.

여성 참정권 운동과 인종 차별 반대에도 앞장섰다. 미국여성참정권연합과 협력해 여성의 투표권 확보를 위해 투쟁했고,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의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며 공권력 남용으로부터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데 기여했다. 차별 없는 사회를 향한 그녀의 신념은 당시 주류 사회의 냉대와 비판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됐다.

말년에는 미국시각장애인재단(AFB)의 해외 대사 자격으로 전 세계 30여 개국을 순방하며 장애인 복지 증진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4년 미국 최고 권위의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장애인 인권 보장과 사회 복지 제도의 기틀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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