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공학의 기적, 486m 뉴욕 브루클린교 개통 [김정한의 역사&오늘]

1883년 5월 24일

브루클린교. (출처: Miscellaneous Items in High Demand, PPOC, Library of Congress, 190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83년 5월 24일, 미국 뉴욕의 이스트강을 가로지르며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거대한 건축물인 브루클린교가 착공 14년 만에 정식 개통했다. 주교의 길이 486.3m로 개통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장 긴 현수교였다.

브루클린교의 완공은 당대 공학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은 인류의 승리였다. 개통식에는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과 그로버 클리블랜드 뉴욕주지사를 비롯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세계 역사상 가장 긴 현수교의 탄생을 축하했다.

설계자인 존 로블링은 세계 최초로 철강 케이블을 사용한 현수교를 구상했으나, 공사 초기 부상으로 사망했다. 뒤를 이어 아들인 워싱턴 로블링이 수석 엔지니어로 공사를 이끌었지만, 그 역시 강바닥 기초 공사 중 고공잠함병(감압병)에 걸려 전신 마비 상태에 빠졌다.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공사를 완수해 낸 인물은 워싱턴의 아내인 에밀리 로블링이었다. 그는 남편의 수석 조수 역할을 자처하며 독학으로 고등 수학과 교량 공학을 공부해 현장 엔지니어들과 소통했고, 마침내 남편의 설계를 완벽한 현실로 만들어냈다.

이 다리의 개통은 단순한 교통로의 확보를 넘어 뉴욕의 지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당시 독립된 시였던 맨해튼과 브루클린이 하나로 묶이면서 인적·물적 교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는 훗날 대도시 뉴욕(Greater New York)으로 통합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거대한 석조 탑과 웅장한 케이블이 조화를 이룬 이 다리는 산업화 시대로 진입하는 미국의 압도적인 국력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공사 과정에서 20명이 넘는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등 수많은 희생과 차질이 있었으나, 고난을 이겨내고 완공된 브루클린교는 인간의 집념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걸작으로 기억되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