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의 입법자, 이마누엘 칸트 영면 [김정한의 역사&오늘]
1804년 2월 12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04년 2월 12일, 서구 근대 철학의 거대한 물줄기를 바꾼 이마누엘 칸트가 80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평생 고향인 쾨니히스베르크를 한 번도 떠나지 않았으나, 그의 사유는 전 유럽을 넘어 인류 지성사의 지형을 영구적으로 재편했다.
칸트의 업적은 흔히 '비판 철학'으로 요약된다. 그는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가진 한계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1781년 출간된 '순수이성비판'에서 그는 인간의 인식이 단순히 대상을 수동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관이 가진 틀(시간과 공간, 범주)을 통해 대상을 구성한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선언했다.
이로써 그는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엄밀히 검토하고, 인간 이성이 도달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규정했다. 인식론의 정립 이후 칸트는 윤리학의 토대를 닦는 데 매진했다. '실천이성비판'을 통해 그는 인간이 단순한 본능이나 욕구의 노예가 아닌, 스스로 입법한 도덕 법칙을 따르는 자율적 주체임을 강조했다.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이른바 '정언명령'이라 불리는 이 원칙은 결과보다 동기를 중시하며,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확립했다.
말년의 칸트는 '판단력비판'을 통해 미학적 판단과 목적론을 탐구하며 지식과 도덕 사이의 가교를 놓았다. 또한 '영구 평화론'을 통해 국가 간의 분쟁을 종식시키고 세계 시민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철학적 설계도를 제시했다.
그는 평생 규칙적인 생활을 고수하며 '걸어 다니는 시계'로 불렸다. 근대 철학은 칸트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그의 묘비에는 '실천이성비판'의 결론부에 나오는 문구가 새겨졌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새롭고 높아지는 감탄과 경외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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