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 황녀' 덕혜옹주 37년 만의 귀국 [김정한의 역사&오늘]
1962년 1월 26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62년 1월 26일, 일제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갔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37년이라는 긴 유랑의 세월을 뒤로하고 마침내 고국 땅을 밟았다.
1912년 5월 25일 고종 황제의 고명딸로 태어나 극진한 사랑을 받았던 덕혜옹주의 삶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은 1925년이다. 일제는 유학이라는 명목하에 그녀를 강제로 도쿄로 보냈다. 어머니 양귀인의 죽음과 낯선 타국 생활은 어린 옹주에게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을 줬다. 이는 평생 그녀를 괴롭힌 조현병의 시초가 되었다.
1931년 대마도 도주 소 다케유키와의 정략 결혼, 뒤이은 외동딸 정혜의 실종과 이혼, 그리고 정신병원 수용소에서의 고독한 생활까지. 옹주의 삶은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지표였다.
귀국 현장에는 옹주의 유치원 시절 보모였던 변복동 여사가 나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맞이했다. 변 여사는 옹주를 붙들고 통곡했다. 그러나 옹주는 아무 대답 없이 멍한 표정으로 휠체어에 몸을 맡겼다.
덕혜옹주는 곧바로 서울대학교 병원으로 이송되어 정밀 검진과 치료를 받았다. 이후 그가 머물 곳은 창덕궁 낙선재로 정해졌다. 비록 정신은 온전치 못하나, 그가 생전 일기장에 남겼던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대한민국 우리나라"라는 간절한 소망은 오랜 시간 만에 이루어진 셈이다.
덕혜옹주의 귀국은 박정희 국가재건비상조치위원회 의장의 승인과 김을한 기자의 끈질긴 노력이 결실을 본 결과였다. 그의 귀국은 한 개인의 귀환을 넘어 일제 강점기가 남긴 깊은 흉터를 어루만지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망국의 한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마지막 황녀는 낙선재 수강재에 칩거하다 1989년 4월 21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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