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천문학자·의사·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503년 12월 14일

노스트라다무스 (출처: César de Notre-Dame, 1614,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503년 12월 14일,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생레미에서 미셸 드 노트르담이 태어났다. 훗날 라틴어식 이름인 노스트라다무스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의사, 천문학자,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예언가로 기록됐다.

유대계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부와 외조부에게 라틴어, 수학, 점성술 등의 폭넓은 지식을 습득했다. 15세 무렵 아비뇽 대학에 입학했으나 흑사병 창궐로 대학이 문을 닫자, 프랑스 전역을 방랑하며 실질적인 학문을 연마했다. 이후 몽펠리에 대학 의대에 입학해 의사 자격을 얻었고, 당시 만연했던 흑사병 치료에 혁혁한 공을 세우며 명성을 쌓았다.

그러나 흑사병은 그에게 개인적인 비극을 안겼다. 첫 번째 아내와 자식들을 잃은 아픔을 겪은 뒤, 그의 삶은 신비주의와 점성술에 빠져들었다. 1550년대부터 다음 해의 운세를 점치는 '연감'을 발행하며 예언가로서 대중적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1555년 유명한 예언집 '제세기'의 초판을 출간했다. 이 책은 네 줄짜리 시(카트랭) 형식의 모호하고 비유적인 구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추종자들은 이 예언들이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등장, 9.11 테러 등 수백 년 후의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발탁되어 궁정의 정책 자문 겸 점성술사로 활동하면서 그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하지만 그의 시적이고 모호한 표현 때문에 어떤 사건에도 끼워 맞추기가 가능하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이자 의사였던 그는 시대를 초월해 수수께끼 같은 예언을 남기며 현재까지도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1566년 통풍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과 예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회자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불안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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