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위샹의 베이징 정변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24년 10월 23일

타임지 표지에 실린 펑위샹. (출처: TIME Magazine, 192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4년 10월 23일, 중국의 직예군벌 소속의 핵심 인물인 펑위샹이 베이징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정변은 당시 제2차 직봉전쟁의 전세를 완전히 뒤집고 북양정부의 혼란을 가중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정변의 배경에는 직예군벌 내부의 해묵은 갈등이 있었다. 직예파의 수령인 차오쿤은1923년 뇌물 선거를 통해 중화민국 대총통 자리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펑위샹을 포함한 부하 군벌들에게 충분한 논공행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특히 펑위샹은 직예파의 실세인 우페이푸에게 자신의 권익이 부당하게 축소되었다고 느꼈다.

이러한 불만을 품고 있던 펑위샹은 제2차 직봉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봉천군벌의 수장인 장쭤린과 은밀히 접촉, 동맹을 맺었다. 전쟁 초기, 우페이푸가 이끄는 직예군이 봉천군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에서, 베이징의 방위를 맡고 있던 펑위샹의 배신은 전쟁의 흐름을 단번에 바꿨다.

정변 당일 펑위샹의 국민군 병력은 신속하게 대총통부와 주요 정부 기관을 장악하고 차오쿤 대총통을체포, 가택 연금했다. 전세는 봉천군에게 유리하게 기울었다. 결국 우페이푸는 황급히 군대를 돌려 베이징으로 향했지만, 봉천군과 국민군의 협공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베이징을 완전히 장악한 펑위샹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선통제)를 자금성에서 완전히 축출했다. 청 황실에 대한 우대 조건을 대폭 수정하고, 푸이의 황제 존호를 영구히 폐지해 일반 시민으로 강등시켰다. 이로써 청 황실은 1912년 신해혁명 이후 자금성에 머물던 12년의 생활을 끝내고 공식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펑위샹의 정변으로 중국 북부의 정치 지형은 완전히 재편됐다. 군벌 혼전은 심화됐다. 이는 광저우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쑨원의 국민당에게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제공했다. 1928년 국민당의 북벌이 완수될 때까지 중국의 혼란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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