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이 연 K콘텐츠 새 지평…장르 혁명 지속돼야 [전문가 칼럼]

권상희 대진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권상희 대진대 실용음악학과 교수

2025년, K-콘텐츠는 또 한 번의 세계적 전환점을 맞이했다. 애니메이션 기반 프로젝트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케데헌)가 그 주인공이다. 이 작품은 기존 K팝의 경계를 넘어선 서사형 음악 프로젝트로 평가받으며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누적 조회 수 3억 회를 돌파했다.

주제곡 '골든'(Golden)은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를 차지하며 K팝 사상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고, 미국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도 3위까지 오르는 등 국내외 음원 차트에서 고른 성과를 거뒀다. 수록곡 '소다 팝'(Soda Pop)과 '유어 아이돌'(Your Idol) 역시 상위권에 진입하며 팬들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었다. 케데헌 팀은 추석 연휴 기간인 7일(현지 시간) 미국 NBC 토크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 출연하는 영예를 누리며 글로벌 팬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프로젝트는 K팝이 단순한 음악을 넘어 스토리와 비주얼을 결합한 세계적 콘텐츠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 헌트릭스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이 미국 NBC 인기 토크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에 출연해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출처: 지미팰런쇼 SNS, 재판매 및 DB 금지) /뉴스1
'케데헌' 세계 1위로 '혼합 문화 DNA' 증명

케데헌의 성공은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정체성과 글로벌 확장이 결합한 결과다. 기존 K팝이 시각적 완성도와 트렌디한 음악으로 사랑받았다면, 케데헌은 여기에 '문화 융합형 스토리텔링'을 더했다. 한국적 미학을 바탕으로 글로벌 문화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융합한 점이 핵심이다.

'아이돌'(Idol)과 '훈민정음'을 결합한 '돌민정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외국 팬들이 '오빠'(Oppa), '막내'(Maknae), '애교'(Aegyo) 등 한국어 발음을 배우는 현상이 확산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언어가 문화를 넘어 하나의 정체성 코드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스크린 밖에서도 케데헌의 인기는 확산하고 있다. 현실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는 대표적인 사례가 10월 말에 열릴 예정인 김천시 김밥축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싸움 직전 김밥 한 줄을 통째로 먹는 장면이 세계 팬들 사이에서 '가장 한국적인 순간'으로 화제가 되면서 축제는 올해 사상 최대 인파를 예상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가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케데헌은 K팝의 리듬과 안무, 한글을 모티프로 한 장면, 그리고 정(情)과 한(恨)이 교차하는 서사 구조까지 한국 고유의 정서를 글로벌 언어로 재구성했다. 이는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한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한류와 문화 알고리즘

케데헌의 성공은 단순한 음악 산업의 확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의 문화산업은 스토리텔링·디자인·언어·철학이 결합한 하나의 '문화 알고리즘'(Cultural Algorithm)으로 진화하고 있다. 작품 속 한글의 형태적 아름다움이 그래픽 언어로 재해석된 장면은 세계 시청자들에게 "글자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SNS에서는 '#케데헌댄스', '#훈민체아트' 같은 해시태그가 확산하고, K팝 안무와 전통 문양을 결합한 2차 창작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어·한국음악·한국정서가 세계 대중문화의 원천 코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밥 문 케데헌(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갈무리. 재판매 및 DB금지)/뉴스1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기술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하이브리드 미학'이 바로 K팝, K컬처의 본질이다. 이러한 균형감은 한글의 논리적 구조와 한국 사회의 조화적 문화가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K-콘텐츠 지속 성장 위해서는…

K-콘텐츠가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창의적 실험이 흐르고 있다. 음악, 영상, 서사, 기술이 결합한 '융합 예술'로서 K-콘텐츠는 독창적 힘을 갖게 됐다.

한국은 더 이상 '작은 콘텐츠 강국'이 아니다. 이제 한국은 세계 대중음악의 형식과 감성을 동시에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중요한 것은 한국적 감성을 지키면서도 세계와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DNA다.

K-콘텐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가치를 이어주는 공감에서 힘을 얻는다. 한류는 이미 '월드류'(World-Ryu)로 진화했고, 앞으로의 과제는 팬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교감과 문화적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K-콘텐츠를 위해서는 창작의 다양성과 건강한 생태계가 필수적이다. 창의 기반, 독립 아티스트, 글로벌 협업이 어우러질 때 K-콘텐츠는 세계 문화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