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첫 기담집…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다

[신간] '인비인'

'인비인'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르는 불안과 죄의 흔적을 아홉 편의 기담으로 밀어붙인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인비인'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르는 불안과 죄의 흔적을 아홉 편의 기담으로 밀어붙인다. 성해나는 친일의 기억부터 타인의 삶을 거래하는 욕망,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기계까지 끌어와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묻는다.

책의 제목인 '인비인'(人非人)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 또는 사람이기를 스스로 멈춘 존재를 가리킨다. 소설집은 이 낯선 이름을 앞세워 인간이 인간답다는 말이 더는 자명하지 않은 자리를 파고든다. 챗봇과 알고리즘, 진단 기계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의 감각도 그 질문과 맞물린다.

첫머리를 여는 세 편은 오래된 죄와 그 흔적을 따라간다. '벚나무로 짠 5자 너비의 책상'은 야스쿠니신사에서 하사된 책상이 후손의 서재에 놓이기까지의 시간을 좇고, 표제작 '인비인'은 731부대 생체실험의 기억과 방관의 시선을 겹친다. '소돔의 의로운 혈육들'은 친일 유물로 드러난 도검을 둘러싼 가족의 수치심을 통해 죄가 사라지지 않는 방식을 보여준다.

다음 묶음은 다른 삶을 욕망하는 인물들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매일'(買日)에서는 타인의 삶을 사고파는 경매장이 등장하고, '프랭크 오자와'는 100달러에 낙찰된 타인의 인생이 어디까지 진짜인지 묻는다. '윤회(당한) 자들'은 전생을 믿는 모임을 따라가며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어떻게 또 다른 허구를 낳는지 붙든다.

뒤쪽 세 편은 기술이 인간의 자리를 잠식한 세계를 세운다. 휴머노이드에게 밀려난 스턴트맨을 그린 '아미고', 유해 언어를 걸러내는 노동을 좇는 '#유령', 안드로이드 의사와 함께 파멸로 기우는 한의사를 다룬 '고'가 한 축을 이룬다. 편리함을 떠받치는 인간의 피로와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기계의 역설이 이 대목에 모인다.

이 소설집의 공포는 귀신이나 괴물보다 인간 쪽에 가깝다. 가해자는 스스로를 하수인이라 여기고, 방관자는 눈앞의 기록을 소비 가능한 이야기로 밀어 넣는다. 작품마다 서늘함이 남는 이유도 설명되지 않는 악보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태도가 더 또렷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책에는 소설 아홉 편과 함께 작가가 직접 쓴 해설 아홉 편이 실렸다. 집필 계기와 조사 과정, 쓰는 동안 마주한 난점이 붙어 있어 소설의 문제의식을 한 겹 더 짚게 한다. 각 부마다 플레이리스트와 일러스트를 더해는 경험을 넓힌 점도 눈에 띈다.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 '혼모노',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 등을 펴냈고 김만중문학상 신인상과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받았다.

△ '인비인'/ 성해나 지음/ 312쪽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