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 앞세운 이웃 나라…인사로 맞선 임금님

[신간] '꾸벅꾸벅'…1993년 출간 30년 만에 복간

그림책 '꾸벅꾸벅'은 전쟁 앞에서도 인사와 겸손을 놓지 않는 임금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 힘을 짚는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그림책 '꾸벅꾸벅'은 전쟁 앞에서도 인사와 겸손을 놓지 않는 임금님 이야기를 통해 평화의 힘을 짚는다. 저자 사노 요코는 1993년 동판화로 만든 이 그림책을 30년 만에 다시 꺼내 권위와 폭력 대신 존중이 남기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조금도 으스대지 않는 임금님이 있다. 그는 아침마다 왕비와 신하, 요리사뿐 아니라 뜰의 두꺼비와 공작새, 꽃들, 식탁 위 생선에게까지 꾸벅꾸벅 인사를 건넨다.

이 인사는 예의범절의 장식이 아니다. 가장 강한 자로 여겨지는 임금님이 가장 작은 존재에게도 먼저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책 전체의 질서를 바꾼다. 존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권위가 아니라 모든 존재를 향한 태도로 놓인다.

평화로운 성 안의 공기는 이웃 나라에서 날아든 선전 포고 한 장으로 흔들린다. 전쟁을 제일 잘한다며 으스대는 임금이 침략을 알리자 대신은 대포를 세우고 말과 병대를 불러 모으며 맞설 채비를 갖춘다.

하지만 임금님이 내린 명령은 뜻밖이다. 그는 대장에게 "언제나처럼 꾸벅꾸벅 싸운다"고 말하고, 총알과 대포알이 날아드는 순간에도 먼저 인사를 택한다. 책은 이 장면을 통해 폭력의 언어와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그것을 비껴 가게 하는 태도를 밀어 올린다.

이 서사는 액자 구조로 한 번 더 감싸진다. 아이가 아빠에게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청하고, 아빠가 꾸벅꾸벅 임금님의 이야기를 끝까지 이어 간다. 마지막에 콜라 캔을 차며 노는 장면이 붙으면서 전쟁 이야기와 아이의 놀이가 한 줄로 이어진다.

그림은 1993년 초판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또렷하다. 동판화의 가는 선은 날카롭지만 거칠지 않고, 그 위에 얹힌 수채화의 표정과 몸짓은 성 안의 공기와 전장의 긴장을 함께 살린다. 정교한 선과 부드러운 색채가 맞물리며 책의 메시지를 과장 없이 받친다.

김영순 번역은 제목에 걸린 말맛까지 옮기려 한다. 일본어 'ぺこぺこ'가 인사하는 몸짓과 찌그러진 모양을 함께 가리키는 데서 출발해, 책 말미의 '꾸깃꾸깃'과 연결되는 장면을 우리말 안에서 다시 세운다. 인사와 전쟁, 승리와 찌그러짐이 한 단어의 울림 안에서 맞부딪히는 셈이다.

사노 요코는 '100만 번 산 고양이'로 널리 알려진 그림책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다. '꾸벅꾸벅'은 그가 오래 붙들어 온 삶과 사랑, 고독과 평화의 문제를 가장 간명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힘을 과시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무엇이 끝내 남는지, 이 복간본은 인사하는 임금님의 몸짓으로 다시 묻는다.

△ '꾸벅꾸벅'/ 사노 요코 지음/ 김영순 옮김/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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