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중국까지…문명의 서사를 신화로 다시 묻다

[신간] '신화의 역사'

'신화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중국까지 여러 문명의 신화를 역사적 맥락 안에 다시 놓고, 신화가 왜 오래 살아남는지 묻는다. 저자 심용환은 '오뒷세이아', 게르만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사례를 따라가며 신화를 인간과 문명을 읽는 틀로 다시 세운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신화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중국까지 여러 문명의 신화를 역사적 맥락 안에 다시 놓고, 신화가 왜 오래 살아남는지 묻는다. 저자 심용환은 '오디세이아', 게르만 신화,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사례를 따라가며 신화를 인간과 문명을 읽는 틀로 다시 세운다.

현대의 정보 과잉은 삶의 의미를 채워주지 못했고, 이 책은 그 틈에서 다시 신화를 호출한다. 사랑과 죽음, 복수와 귀향처럼 오래된 이야기의 축을 따라가며 공동체가 기원과 가치, 규범을 어떻게 서사로 묶어왔는지부터 짚는다.

그리스 신화 파트는 영웅담의 찬양보다 전쟁과 폭력의 구조를 먼저 들여다본다. '일리아스'를 두고는 고대 그리스의 혈투가 반복되는 장면을 직시하고, 아테네와 아레스, 헤라클레스 같은 존재도 영웅성과 파괴의 경계에서 다시 읽는다.

이어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을 신화의 변형 과정으로 다룬다. 전통 서사를 잘라내 새로운 비극으로 만든 순간을 발전과 몰락 사이의 질문으로 돌려세우는 대목도 들어 있다.

게르만 신화 파트는 신화가 민족의 기억으로 호출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13세기 산문 '에다'와 1643년 발견된 운문 '에다', 19세기 낭만주의와 민족주의를 거치며 아르미니우스와 프리드리히, 오딘과 토르, 지크프리트가 독일 민족의 기원 서사로 재배치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다루는 대목에서는 신화가 문명의 성격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보여준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영생을 얻지 못한 인간의 필멸성을 붙들고, 나일강의 이집트 신화는 부활과 영원의 질서를 국가 종교의 틀 안에서 키워낸다.

인도 신화로 넘어가면 신화의 무대는 국가보다 사회에 가깝다. '마하바라타'와 칼리 유가, 다르마를 따라가며 예언과 비극, 구원과 고행을 함께 짚고, 자이나교와 불교의 쇠퇴 뒤에도 힌두교가 더 화려하게 살아남은 흐름을 묶는다.

중국 신화 파트는 신비와 환상, 영웅과 종교 요소가 초기에 배격된 흐름을 통해 '신화가 없는 문명'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공자의 인문주의와 도교의 제한적 신선 서사, 20세기 위앤커의 정리 작업을 함께 놓고 중국 신화가 어떻게 뒤늦게 분류되고 조직됐는지 살핀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 소장이자 성공회대학교·장로회신학대학교 외래교수인 저자는 그리스에서 중국까지 흩어진 사례를 한 권에 묶어 인간이 왜 사실보다 이야기에 더 움직이는지 끝까지 추적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지식을 압축해 내놓는 시대에도 신화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그리고 문명이 어떤 욕망과 불안을 서사로 남겨왔는지를 되묻는 책이다.

△ '신화의 역사'/ 심용환 지음/ 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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