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합본판으로 다시 만난다…SF소설 팬이라면 다 아는 김보영 대표작

난민의 우주 표류와 인류 문명의 흥망…3편으로 잇는 우주 로맨스
[신간]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광속 여행이 갈라놓은 연인과 그 다음 세대의 시간을 한 권에 묶어 상대성이론이 바꾸는 사랑과 문명의 풍경을 함께 밀어 올린다. 저자 김보영은 편지 16통으로 이어지는 두 편의 로맨스와 '미래로 가는 사람들'을 한데 엮어 기다림, 난민의 시간, 인류의 흥망을 같은 우주 항로 위에 놓는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광속 여행이 갈라놓은 연인과 그다음 세대의 시간을 한 권에 묶어 상대성이론이 바꾸는 사랑과 문명의 풍경을 함께 밀어 올린다. 저자 김보영은 편지 16통으로 이어지는 두 편의 로맨스와 '미래로 가는 사람들'을 한데 엮어 기다림, 난민의 시간, 인류의 흥망을 같은 우주 항로 위에 놓는다.

기다림의 시간을 광속 여행으로 바꾸다

한 사람에게 건네는 프러포즈용 청탁에서 출발한 첫 작품은 이번 합본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가족 일로 먼 항성계에 다녀와야 하는 연인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시간 차를 줄이려는 남자가 '기다림의 배'에 오르면서 이야기는 사랑의 서약을 물리 법칙의 문제로 바꿔놓는다.

남자는 지구에서 9년을 보내는 대신 4년 반 동안 돈을 모아 우주선 표를 산다. 다른 별에서 돌아오는 사람과 시간대를 맞추려는 선택이지만 착오와 정치적 혼란이 겹치면서 여정은 끝없이 늘어나고, 기다림은 계산 가능한 시간이면서 동시에 버티기 어려운 고독으로 변한다.

첫 편이 좁은 우주선 안에 남겨진 한 사람의 고립을 밀어 올린다면, 두 번째 작품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반대편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다시 쓴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만나러 지구로 향하던 여자는 난민이 돼 우주를 떠돌고, 수많은 사람 속에서 사랑과 생존을 함께 붙든다.

두 작품은 모두 열다섯 통의 편지 형식을 취하지만 풍경은 선명하게 갈린다. 혼자 남아 미래를 향해 미끄러지는 남자의 시간과 사람들 사이를 떠밀리며 귀환로를 찾는 여자의 시간이 나란히 놓이면서, 같은 사랑이 서로 다른 장소성과 체감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드러난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파트인 '미래로 가는 사람들'은 시간상으로는 가장 뒤에 놓이지만 실제 집필 순서로는 가장 앞선 작품이다. 앞선 두 이야기의 자녀 세대에 해당하는 인물 성하를 앞세워, 개인의 약속에서 시작한 서사가 인류 문명의 흥망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항해로 뻗어나간다.

이 작품은 기·승·전·합 네 파트로 짜였다. 항법사를 찾아 돌아올 때마다 인류 문명이 다시 세워지는 세계에서 성하는 광속 여행을 거듭하며 자신의 역할과 세계의 끝을 동시에 바라본다.

상대성이론은 이 합본판에서 배경 설정에 머물지 않는다. 빛의 속도에 가까워질수록 내부 시간이 느려진다는 전제는 연인의 재회를 미루는 장치이자, 같은 장소가 다른 시대에는 전혀 다른 세계로 바뀌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이 3부작에서 기다림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의 조건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려면 현재를 건너뛰어야 하고, 그 사이 문명은 쇠락하거나 다시 세워지며, 인물들은 약속 하나를 붙든 채 낯선 미래를 통과한다.

개정합본판이 묶어낸 세 갈래 궤적

개정합본판은 세 편을 한 권으로 묶어 이런 시간의 겹침을 전면에 세운다. 첫 두 작품이 재회의 지연과 엇갈림을 밀도 있게 따라간다면, 마지막 작품은 우주의 끝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순간까지 시야를 넓혀 서사의 축을 개인에서 문명으로 옮긴다.

이 책이 다시 묶인 배경에는 김보영 작품의 해외 진출도 놓여 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 '저 이승의 선지자'는 세계적 출판 그룹 하퍼콜린스에서 영어판으로 출간됐고 프랑스, 일본, 폴란드, 중국, 태국 등에서도 번역 판권 계약이 이뤄졌다.

국내 SF에서는 처음으로 할리우드 영상화 계약이 체결됐다는 점도 이번 합본판의 위치를 보여준다. 두 작품의 영화화가 예정돼 있고 뮤지컬 제작 계획까지 더해지면서, 한 사람을 향한 편지 형식의 로맨스는 장르를 넘어 확장되는 중이다.

김보영은 2004년 제1회 과학기술창작문예 공모전 중편소설 부문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촉각의 경험'에서 출발한 문제의식은 '얼마나 닮았는가', '다섯 번째 감각', '7인의 집행관', '종의 기원담', '저 이승의 선지자', '천국보다 성스러운', '역병의 바다', '고래눈이 내리다' 같은 작품으로 이어졌다. 그 한국 작가 최초로 미국 SF 웹진 '클락스월드'에 작품을 발표했고, 한국 SF 사상 처음으로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김보영 지음/ 360쪽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