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꼬집'보다 넉넉한 '자밤'…강현영이 말하는 한식의 맛

"자연재료는 상태가 매번 달라서, 숫자만으로 맛이 고정되지 않아"
[인터뷰] '자밤의 미학' 저자 강현영 요리연구가

음식인문학자 강현영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초빙교수가 만든 유자증편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도곡동 강쌤'. 음식인문학자 강현영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초빙교수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신간 '자밤의 미학'을 펴낸 강 교수는 최근 서울 뉴스1 본사에서 "스튜디오가 아니라 집 주방에서 수강생을 만나다 보니 이런 별칭까지 생겼다"며 웃었다.

주방은 맛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강현영 교수는 "수업 뒤에 돌아갈 곳이 결국 각자의 집"이라며 "집마다 다른 주방 환경이 음식의 맛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요리하는 공간의 동선과 도구가 바뀌면 긴장감과 속도, 리듬이 달라진다. 스튜디오에서 잘 되던 요리가 집에서 낯설어지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신간 '자밤의 미학'은 인문 교양서다. 당연히 요리책을 펴낼 것이라는 예상에서 벗어난 셈이다. 저자는 궁중음식·고조리서·과학·공간을 가로지르며 K-푸드와 집밥의 감각을 오롯이 담았다. 강 교수는 그 출발이 '자밤'이라고 했다. '자밤'은 세 손가락, 엄지·검지·중지를 둥글게 모아 식재료를 그러쥐는 감각이다.

정확한 계량을 중시하는 시대에 왜 '자밤'을 내세웠는지 다시 물었다. 강 교수는 계량이 표준화에 유용하지만 자연 재료는 매번 상태가 달라서, 숫자만으로 맛이 고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음식인문학자 강현영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문화연구원 초빙교수

자밤의 역할은 맞춤형 요리이기도 하다. 강 교수는 "손끝으로 재료의 상태를 읽고, 그날의 조건에 맞게 미세하게 조율하는 일"이라며 "는 사람의 컨디션까지 살피는 '맞춤형 조리'가 여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런 감각은 궁중음식으로 구체화된다. 강 교수는 궁중만두를 '자연 재료와 정성이 빚어낸 예술'이라고, 디저트 '란'(卵)을 '손끝에서만 탄생하는 시간의 예술'이라 평했다.

현대인에게 디저트 '란'이 오히려 번거로운 음식이 아니냐고 묻자 강 교수는 "의도된 비효율이 주는 위로가 있다"며 "한 알을 빚는 데 들어간 시간과 온기를 대접하는 일이라서, 단순한 디저트를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한식의 기본 바탕을 묻자 강 교수는 "약식동원과 오방색"이라며 "맛뿐 아니라 몸의 균형과 시각적 조화를 함께 설계한 전통"이라고 했다. 아울러, K-푸드가 대량화되는 지금, 잃지 말아야 할 뼈대에 대해 "발효, 특히 '장'(醬) 문화다. 산업화가 속도라면 발효는 시간과 기다림의 미학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콩나물을 부족한 영양을 메우던 '생명수'라고 표현했다. 또 진주면은 정성과 시간으로 빚은 '미식의 반란'이라고 극찬했다.

이런 표현에 대해 강 교수는 "전통은 고루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어서였지만 조리서 속에는 지금 봐도 파격적인 상상력이 숨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접시 위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한식 인문학을 차려내고 싶다"며 "사전에만 남을지 모를 '자밤'을 부엌의 말로 되살려, 한 끼의 태도와 관계까지 다시 묻고 싶었다"라며 말을 맺었다.

△ 자밤의 미학/ 강현영 지음/ 동국대학교 출판문화원/ 1만 8000원

자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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