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패권의 결말은 다극 세계…분열의 생장점을 묻다"

[신간] '다극세계가 온다'

[신간] '다극세계가 온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브라질 출신 지정학 저널리스트 페페 에스코바가 5년간의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다극세계의 부상을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다극세계가 온다'는 우크라이나 전쟁, 탈달러, 국제 경제 회랑, 중국·러시아·조선 협력, 팔레스타인 문제를 한 권으로 묶어 '미국 패권 이후'를 구체 장면으로 제시한다.

책은 후퇴의 현장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아프가니스탄의 수치스러운 철군과 파이프라인을 둘러싼 힘의 줄다리기를 통해 3차 세계대전의 문턱에 선 파편화된 세계를 진단한다.

이어 달러 패권을 우회하려는 글로벌사우스의 경주, 노르트스트림과 '시베리아의힘2'로 상징되는 에너지 지정학의 재편을 현지 감각으로 포착한다. 이 책은 논쟁적 주장보다 현장성으로 독자를 끌고 간다.

1부는 전쟁이 아니라 무역으로 질서를 다시 짜려는 반전통상의 기치를 추적한다. 중국의 선택은 새 패권이 아니라 간섭 최소화에 있다. 저자는 이를 새로운 공산당 선언의 언어로 독해하며, 상트페테르부르크 경제 포럼과 루미의 발자취 같은 문화·정신의 지층까지 연결해 흐름을 그린다.

2부는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의 청사진을 모스크바 다이어리, 일대일로 열차, 푸틴·시진핑 회담으로 해석한다. 달러 이후의 질서는 붕괴가 아니라 단계적 이행으로 다가온다. 브릭스권 통화 R5가 거론되며 금·핵심자원·실물 생산·디지털 결합·주권 신뢰를 축으로 한 '새 결제수단→가격체계→준비통화'의 3단계 경로가 제시된다.

이어 3부는 거대한 체스판이 뒤집히는 현장을, 4부는 다극세계와 미 제국의 정면충돌을 서아시아·중앙아시아·러시아 극동에서 포착한다. 일대일로·브릭스 로드맵, 팔레스타인에서 드러난 서방 '가치'의 이중성, 러시아 극동의 투자 드라이브 등 연결 전략이 구체 사업으로 진화한다.

2020년대 세계정세의 급변이 책을 탄생시켰다. 저자는 관세 전쟁, 우크라이나 전장의 교착, 미 달러 무기화가 낳은 역풍을 헤게모니 안락사의 촉매로 본다. 브릭스 10 확대와 비서방권의 상호결제가 달러 의존을 낮추고, '전쟁보다 무역'이라는 통합 전략이 실체화되는 과정을 기록한다. 특히 한국어판에는 2025년 트럼프 2.0 국면 평가가 추가돼 동시대성을 높였다.

저자 페페 에스코바는 브라질 출신 국제 저널리스트로, 유럽·아시아·라틴을 넘나든 특파원 경력과 분쟁 지역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브릭스·SCO·EAEU 같은 다자기구를 장기간 추적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과 무관하게 다극세계 담론의 논리·어휘·네트워크를 원전 수준으로 접하면 한국의 외교·산업·무역 전략을 재설계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 다극세계가 온다/ 페페 에스코바 지음/ 유강은 옮김/ 돌베개/ 2만 1000원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