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정보 관리나 처리의 오류"…의학 발전 이룬 혁신적 관점
[신간]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전주홍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의학의 변천을 다룬 신간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를 펴냈다.
전주홍 교수는 신화와 주술에서 인공지능 시대까지 질병을 해석해온 관점의 변화를 통해 의학의 미래를 모색한다.
전 교수는 의학사를 관통하는 다섯 가지 관점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질병을 이해하고 극복해 왔는지를 조망한다.
신화와 주술에 의존하던 고대의 질병관부터 체액설, 해부병리학, 분자의학, 정밀의학에 이르는 흐름은 과학적 패러다임 전환의 과정이었다.
저자는 새로운 관점이 반드시 이전 관점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고, 축적된 지식 위에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먼저 신의 노여움으로 질병을 해석하던 고대의 모습을 소개한다. 미신적 치료와 주술적 의술은 합리적인 접근을 억눌렀지만, 고통과 불안을 위로하는 정서적 기능을 담당했다. 저자는 과학이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일부 사회에서 신화적 질병관이 유지되는 현실을 지적하며,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정서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체액설을 중심으로 한 자연적 질병관을 다룬다.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의 권위에 힘입어 중세까지 이어진 체액설은 건강과 세계를 설명하는 체계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피를 뽑아내는 사혈 같은 오류는 환자에게 오히려 해를 끼쳤다. 17세기 윌리엄 하비가 혈액순환을 증명하면서 비로소 이 이론은 무너졌다.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적 전환을 다룬다. 예술가들이 인체 구조를 정밀하게 묘사하려 했던 시도는 근대 해부학으로 이어졌다. 조반니 바티스타 모르가니는 환자의 임상 소견과 부검 결과를 연결하며 “질병의 증상은 고통받는 장기의 비명이다”(p.149)라고 표현했다. 이는 의학을 장기 중심으로 이해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이었다.
현미경 발명과 함께 열린 분자의학을 설명한다. 의과학자들은 분자 수준에서 생명현상을 탐구하고 질병의 원인을 규명했다. 분자의학은 특정 분자 표적만 제거하는 항암제 개발로 이어졌고, PCR 기술 같은 혁신적 진단법의 기반이 되었다.
정보화된 질병의 관점이다. 유전 정보를 암호로 해석하는 방식은 정밀의학의 토대가 되었다. 환자의 유전자 변이에 따라 다른 항암제를 처방하는 방식은 획일적 치료를 넘어 개인 맞춤형 치료 시대로 나아가게 했다. 저자는 "질병을 정보 관리나 처리의 오류로 보는 관점은 의학의 혁명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책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생의학 데이터 분석이 불러올 의학의 미래를 전망한다. 챗GPT가 환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로봇이 수술을 집도하는 시대에도 판단의 몫은 인간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과학기술 발전의 파급력을 다루는 데 콜링리지 딜레마를 인용하며, 인문학적 성찰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짚는다.
저자는 의학의 역사는 과학적 성취뿐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맥락과 맞물려 있다고 강조한다. 오류와 실패, 우연과 혼란 속에서 축적된 지식이 의학을 발전시켰듯이, 미래 역시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열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 역사가 묻고 의학이 답하다/ 전주홍 지음/ 지상의책(갈매나무)/ 2만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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