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혜순, 뭉뚱그려진 세상에 구멍을 뚫다

[신간]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난다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시인 김혜순의 신작 시집이 시집 시리즈 '난다시편'의 첫 권으로 출간됐다. 독일 국제문학상 수상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신작은 미발표작 65편과 시인의 편지, 그리고 대표작 1편의 영문 번역을 수록했다.

이 시집은 고통을 유쾌한 그릇에 담아낸 시들의 모음이다. 시인은 어느 날 커다란 수조 속에서 흔들리는 말미잘(Sea Anemone)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번 시집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죽음이 얼굴에 드리운 험한 사람이 됐을 것"이라는 고백처럼, 시는 그를 살게 한 끈이자 슬픔으로 팽팽한 철사였다.

김혜순의 시는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없음'과 '죽음'의 칼은 세상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뭉뚱그려진 중심을 쪼개어 새로운 생명을 드러내는 장치다. 시 속의 유머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고통과 무거움을 뚫는 구멍이 되어 현실의 경직성을 무너뜨린다.

시인은 ‘나’가 아닌 리듬, 호흡, 맥박이라는 살아 있는 운동으로 시적 주체를 대체한다.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는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 홀로 파동하며 존재하는 말미잘처럼, 해석 불가능한 세계를 그 자체의 리듬과 무늬로 보여준다. 이는 '삶 아닌/죽음 아닌' 것의 상태를 통해 고정된 경계 없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난다시편'은 해설 없이 오직 시인의 목소리만 담아낸다. 또한 언어의 경계를 넘어 시 한 편을 영문으로 번역해 실었다. 일반 시집 외에 '더 쏙'이라는 미니 에디션을 함께 선보여 시를 소장하는 즐거움을 더했다.

△싱크로나이즈드 바다 아네모네/ 김혜순 글/ 난다/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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