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다채로운 삶을 조명하다"
[신간] '야만의 해변에서'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유럽 중심의 대항해 시대사를 뒤집는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향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다채로운 삶을 조명하며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제시한다. 기존의 피정복자라는 틀을 넘어, 외교 사절, 탐험가, 중재자, 유럽인 가족의 일원으로서 유럽 땅을 밟았던 원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방대한 1차 자료와 유럽인들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원주민들의 행적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왕의 칙령, 회계 장부, 영수증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유럽을 방문한 원주민들의 이름, 여정, 삶의 단편들을 복원한다.
노예로 끌려왔지만 자유를 갈망하며 법정에 호소하고 왕에게 탄원했던 이들, 유럽 왕궁에서 당당히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했던 원주민 귀족들의 이야기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심지어 코르테스와 동맹을 맺고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틀락스칼라인들처럼, 자신들의 공을 인정받기 위해 스페인에 사절을 파견했던 이들의 존재는 놀라움을 자아낸다.
또한, 뛰어난 능력으로 유럽과 아메리카 두 세계를 연결했던 이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의학, 언어,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유럽에 전파했다. 원주민 의사의 의학서는 유럽 왕실에 소장되었고, 앨곤퀸어를 문자로 기록하는 데 기여한 원주민도 있었다. 언어 장벽 속에서 통역사로 활약하며 두 세계의 소통에 영향을 미쳤던 이들도 존재했다. 유럽 정복자들의 배우자나 혼혈 자녀들은 두 대륙을 오가며 교육을 받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과의 만남 초기부터 착취와 억압을 겪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능동적으로 대처했음을 강조한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 역시 대항해 시대의 중요한 주인공이었음을 시사한다.
이 책은 주류 역사에서 주변화되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럽인의 시선으로 기록된 역사 속에서 희미하게 남은 그들의 흔적을 복원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잊힌 역사의 조각들을 맞춰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참혹하고, 때로는 엉뚱하며, 때로는 대담했던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새로운 역사적 통찰력을 제공한다.
△ 야만의 해변에서/ 캐럴라인 도즈 페넉 글/ 김희순 옮김/ 까치/ 2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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