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학습서에 잠식당한' 한국 출판 시장의 기형적 구조
출판 생태계의 다양성 잃고 미래마저 위협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높은 교육열은 한국 사회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자녀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의 염원은 교육 시장을 뜨겁게 달구며 출판 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하지만 과도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 시스템은 한국 출판 시장을 학습서 위주로 재편하는 구조적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최근 출판유통통합전산망의 '화제의 책 200선' 톱 10 중 9권이 수험서였다는 사실은 학습서 중심의 시장 상황을 명확히 보여준다. 서점의 주요 매대를 학습지와 참고서가 점령하면서 문학,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은 점차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다.
학습서 중심의 시장 구조는 장기적으로는 한국 출판 시장 전체의 건강한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출판 다양성의 저해다.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저조한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은 점점 출판 기회를 얻기조차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지식 생태계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다.
학습서 홍수 속에서 작가들의 창작 의욕이 떨어질 수도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실험적인 시도를 담은 창작물보다는 기존 학습 내용을 반복하거나 문제 풀이 위주의 책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작가와 출판사 모두 혁신적인 콘텐츠 개발에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부작용은 결국 독서 문화의 왜곡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시험 성적 향상을 위한 학습 위주의 책에만 익숙해진 독자들은 성인이 돼서도 스스로 읽는 즐거움을 찾고 폭넓은 지적 성장을 도모하는 자발적인 독서를 멀리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개인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 사회 전체의 문화적 소양 부족을 초래할 수 있다.
기형적인 출판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지속 가능한 건강한 출판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창의성과 사고력을 장려하는 교육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출판계 스스로의 자구 노력도 중요하다. 학습서 외에도 문학, 예술, 과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잠재력 있는 양질의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적극 홍보해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 역시 절실하다. 출판 산업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창작 환경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재정 지원, 세제 혜택 등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독서 문화 진흥을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해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한국 출판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를 방치한다면 한국 출판 산업의 미래는 어둡다. 교육계, 출판계, 정부, 그리고 사회가 다 같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다양성이 존중받고 창작 의욕이 고취되며, 독서가 삶의 즐거움으로 자리매김하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출판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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