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의 수집품 4만여점…이제보니 '이야기'를 모았네

[이기림의 북살롱]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 펴낸 이동진 영화평론가
"물건마다 담긴 이야기 수집했다…죽은 이후 공간 해체될 것"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서울 성동구 작업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는 모습./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수집의 역사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였다. 초기에는 생존을 위해 음식을 모으는 수집의 형태였지만 좋아하는 물건을 모으는 취미의 형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집의 유전자는 오랜 시간 사람에 내재했고 세상은 발전했다. 다양한 사물이 생겨남에 따라 수집의 대상도 책, 우표, 음반, DVD, 컵, 미술품, 자동차 등으로 확대됐다.

모든 수집의 한계는 공간이다. 아무리 수집품을 많이 모은다고 해도, 보관해둘 공간이 없다면 골칫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영화평론가인 이동진도 이런 고민에 빠진 수집가였다.

어릴 때부터 뭔가 모으는 것을 좋아하던 이동진도 초등학교 때부터 책, 그리고 우표를 모았다. 성장하면서는 음반, 영화 등도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서울 성동구 모처에 이를 모아둔 공간을 만들었다. 그의 모든 수집품이 모인 198㎡ 공간 '파이아키아'가 그것이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된 '파이아키아, 이야기가 남았다'에는 이동진의 수집품, 수집품에 담긴 이야기, 이를 보관하는 파이아키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사진이 담겼다./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최근 파이아키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 모습에 압도됐다. 이동진이 그동안 모은 2만권의 책, 1만장의 음반, 5000장의 DVD, 5000여점의 수집품에서 '오라'(aura)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는 이 공간에 대해 "좋아하는 작가나 예술가를 향한 훌륭한 '덕질'의 결과물이 모인 곳"이라며 "살아오면서 허겁지겁 욕망으로 탐닉하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동진이 모은 수집품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그가 좋아하는 이승우 작가의 서명이 담긴 책도 있고, 박찬욱 감독이나 봉준호 감독의 서명이 담긴 영화 관련 물품도 있다. 라디오 DJ를 하면서 받은 아이돌그룹의 음반도 있고, 대가들의 음악이 담긴 LP판도 있다. 개중에는 영화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서명한 8000원짜리 장도리도 있고, 팬들이 선물한 굿즈도 있다.

그는 이런 수집품을 그저 모았다. 모아야 하는 습성에 의한 결과였다. 그는 수집품들이 단순한 사물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이동진은 "지금보니 각 물건마다 담겨있는 이야기를 수집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그 물건에 있는 원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수집품이 되면서 만들어진, 혹은 그 물건을 수집할 때까지 들어가있던 예술에 대한 내 오랜 사랑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라고 했다.

'레드존'으로 꾸며진 파이아키아 한쪽 벽면에 이동진이 서있다./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외부 일정이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이동진은 모든 시간을 '파이아키아'에서 보낸다. 수집품을 모아둔 공간이라고는 해도 일일이 보거나 정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에는 좋아서 구매했어도, 한편에 처박힌 채 영영 기억에서 사라지는 수집품이 많다.

이동진은 다르다. 그는 "수집가에게 물건을 매만지는 건 재미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간식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도 공간을 돌면서 수집품을 보고, 끄집어내기도 한다"며 "수집품이 물건이 아니라 저와 대화상대인 느낌이다, 물론 실제로 말하진 않지만"이라고 했다.

수많은 음반에 먼지가 쌓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최근 파이아키아를 선율로 채우기 위한 음반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와 FKA트윅스, 그리고 플레이밍 립스와 마이 모닝 자켓을 택했다. 일하거나 집중할 일이 있을 때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집 CD를 재생해놓는다. 물론 여기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피아노를 전공한 여동생이 입시를 위해 베토벤 소나타를 연주할 때 나는 피아노 밑에 누워있었다"라며 "최근 베토벤 소나타를 들으면 수십 년 전 피아노가 온몸으로 울린 느낌이 떠오르고, 지금의 느낌과 섞이면서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말했다.

결국 이동진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건 물건이든, 사람이든 이야기로 남는다는 점이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이동진의 숨결이 머무는 공간, 과거와 현재가 머무는 공간, 미래가 머물 공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될 공간인 파이아키아도 언젠가는 꽉 차서 수집품을 더 들여올 수 없는 날이 올 것이다. 이동진은 "그때가 되면 서울이 아닌 지방의, 더 넓은 공간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현재 있는 수집품 일부를 버릴 생각은 전혀 없다. 객관적인 가치로 대단한 건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동진에게는 소중하고 중요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수집품과 공간을 영원히 두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이동진은 "내가 죽은 이후에는 이곳이 해체되지 않을까"라며 "내게나 가치 있는 수집품일 뿐이고, 내가 내년쯤 죽으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20년 뒤에는 이동진이란 사람이 뭘 하던 사람인지도 모를 테니 무슨 상관이겠나"라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기본적으로 뭔가를 오래 남기거나 영원히 남기고 싶은 욕망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공간의 해체를 예고했다. 이동진은 "그런 사람치고 방송 등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이야기로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며 "이 짧고 요원하고 벅차고 힘든 삶을 사는 동안 제가 하는 활동들이 누군가에게 한시적으로 즐거움이나 위안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했다.

lgir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