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고난' 함께 견뎌 낸 기록…'이희호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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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홍일의 입에서 세 마디가 튀어나왔다. "아.버.지." 온 힘을 다한 마지막 인사였다. 이희호가 작별의 말을 했다. "정 그렇게 가시려거든 여기는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가세요." 김대중은 눈을 뜨고 이희호를 바라보았다. 김대중의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오후 1시 43분 김대중은 눈을 감았다.'(본문 710쪽)

대한민국 역사상 첫 야당의 집권을 이끌어낸 대통령 김대중의 부인이자 사회운동 지도자였던 이희호 여사에 대한 평전이 출간됐다.

한겨레신문에 80여회에 걸쳐 장기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출간된 '이희호 평전'은 아내의 눈으로 바라본 김대중이라는 현대정치사의 거목에 대한 이야기이자, 유력 여성운동가이자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한 이희호의 이야기를 함께 담고 있다.

이희호가 김대중과 함께한 세월의 태반은 핍박과 죽음의 불길이 어른거리는 '환난의 시간'이었다. 이 책은 김대중이 탄 차를 향해 덮치던 트럭, 일본의 한 호텔에서 납치되어 칠성판같은 판에 온몸이 묶인 뒤 손목과 발목에 쇳덩이가 묶인 채 바다로 던져질 뻔 했던 사건 등 독재정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저지른 만행을 생생하게 담았을 뿐 아니라, 인혁당 사건, 광주학살, 6월항쟁, 이한열 장례식, 대통령 당선 등 현대사를 가로지른 굵직한 사건들을 세밀하게 다시 그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유신독재 시절 망명 아니면 수감때문에 남편 없는 집을 지켜야 했던 이희호를 지탱해준 힘이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정보기관에 둘러싸여 감금에 가까운 생활을 하거나 온 가족이 미국으로 망명가야 했던 고통 속에서도 그의 신념과 의지를 지키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것은 '신앙'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에 유학한 유망한 사회학 연구자로 강단에 섰고 여성문제연구회의 창립을 주도하는 한편 대한YWCA연합회 총무로서 여성기독교운동을 이끌었던 이희호 자신도 김대중 대통령의 이상과 꿈을 함께하고 실천했던 '동역자'(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자)였음을 보여준다.

독재자들의 핍박 속에서도 이희호는 김대중의 투쟁을 지원하고 독려했다. 일본에 머무르던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현재로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으니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권한다.

또한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만약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며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실은 영구차가 서울시청앞 광장에 멈추었을 때 이희호는 단상에 올라 시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남편이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이희호는 김대중과의 한평생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정말 서로 인격을 존중했어요. 늦게 결혼했고 결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참 좋은 분을 만나서 내 일생을 값있고 뜻있게 살았다고 생각합니다."(고명섭 지음·한겨레출판·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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