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반전이 무기, 그러나 내면 탐색은 깊은 작가 최정화
[오늘의 젊은 작가 1] 첫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펴낸 최정화 작가 인터뷰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은희경, 전경린, 권지예 등 여성작가들이 약진했던 2000년대에서 10여년이 지난 현재 다시금 문단엔 독특하고 강렬한 작품을 쓰는 일군의 젊은 여성 작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여성적인 감수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문학적 제스처 없이 지독하고 유머러스하면서 천연덕스럽기도 한 작품들을 쓰고 있다. 황현진, 김금희, 최정화, 이주란 등이 이들이다. 이들 중 최정화(37)가 최근 그의 첫 작품집 '지극히 내성적인'(창비)을 냈다.
최정화 작가는 등단작 ‘팜비치’(2012)부터 심리의 저변을 파헤치는 내공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신경숙 표절사태 당시 많은 중견작가들도 몸을 사린 데 반해 출판사 실천문학이 주관한 젊은 작가 좌담에 나가 날카롭고도 균형잡힌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그는 등단한지 3년에 불과하고 책조차 나오지 않은 '초짜' 소설가였다.
18일 서울시 서교동 출판사 창비 사옥 1층의 카페창비에서 최정화 작가를 만났다. 최정화는 가장 존경하는 작가는 미국의 범죄소설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라고 말했다. 최정화의 작품은 유머와 반전, 인간 내면의 탐색을 특징으로 두고 있다. 그는 '거리두기'로 유머를 구현하고, '친근함'을 비틀어 낯선 인물들을 만나게 한다고 자신의 창작 방법을 설명했다.
다음은 최정화 작가와 가진 일문일답이다.
-첫 작품집임에도 작품들이 굉장히 노련하다. 언제부터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했나.
▶어릴 때부터 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없어서 어른들이 물어봐도 할말이 없었다. 그러다 늦게 사춘기가 와서 나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들며 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이 학원을 안보내주셔서(웃음) 혼자서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게 글이라고 생각해 연습장을 사서 수업시간에 글을 쓰곤 했다. 그게 고3무렵이다. 그래서 원래 이과였는데 교차지원해 국문과를 갔다.
-존경하는 작가가 있는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다. 장편과 단편 모두 잘 쓰는 작가다. 장편에선 알다시피 '리플리'라는 멋진 캐릭터와 흥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단편에선 인생의 중요한 단면을 날카롭게 잘 포착했다. 그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방에 걸어놓을 정도로 좋아한다. 국내작가와 작품으로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좋아한다. 고3때 읽고 마음에 남았는데 최근에 읽어도 또 빛나고 있었다. 어떤 나이에 읽어도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본다.
-작품 속에 일상 속에서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들이 자주 나온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자신의 작품의 어떤 점이 독특하다고 보는가.
▶다양한 화자를 등장시켜 보통 사람들이라면 가리고 싶어하는 (어둡거나 이상한) 심리를 너무 무겁지 않게 유쾌한 방식으로 드러냈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오가닉 코튼 베이브'는 건강에 관심있던 주인공이 유기농법에서 환경문제까지 관심사를 확대하며 국내 한 생활협동조합의 활동가가 되지만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후 그 지역에서 생산한 농작물의 씨앗을 넣은 천 인형을 받자 좋아하지도, 마음 속의 거부감을 드러내지도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주인공의 인간적 한계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홍로', '틀니' 등의 작품에는 '수동 공격적'(passive-aggressive)인 인간들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관계를 역전시키는데.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약자거나 아래쪽에 있는 이들의 관계를 뒤집어주고 싶은 욕망이 내게 있는 것 같다. 기존의 역학관계를 바꿔주고 싶은 마음이 이렇듯 관계가 역전되는 작품을 쓰게 하는 것 같다.
-지난해 실천문학 여름호에서 젊은 작가들을 대표한 몇 명이 신경숙 표절과 문학권력 문제를 토론했다. 그 중 한 명이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나.
▶신경숙 표절사태를 보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을 것이다. 당시 나 역시 표절과 문학권력 당사자의 실망스러운 대응을 보면서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됐고 내가 활동하는 판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그래서 작품 몇 편을 내면서 했던 고민들을 말하고 싶어 그 자리에 나갔다.
'무의식적 표절'이나 '작가의 부주의' 운운하며 사태를 축소해석하려는 경향도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지 않은 표절이라면 문제의 원인은 작가가 '맥락없는 미문을 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왜 그 문장을 마음속에 품었는지를 모른 채 어떤 문장을 도용했다면 그건 작가로서 더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후 당사자들의 대응과정에서 내가 느낀 안타까움은 누구도 이 사태를 자기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해당 작가도, 출판사도, 다른 평론가도, 독자도, 기자도. 그렇다면 누구도 연루되지 않고 책임질 일이 없는 이 사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묻고 싶었다.
-순문학 작품으로는 돈을 많이 벌 수도 없고 생계를 해결하기도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소설가가 됐고 작품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쓰기 자체가 좋다. 물욕이 있거나 안정지향적이면 택하기 어려운 직업이 작가다. 하지만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보장되면 이 일을 하고 싶지 다른 조건 때문에 이걸 포기할 수는 없다. 아마 다른 작가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작가가 되기 전 여러 일들을 해보았다. 조금 더 돈을 벌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사는 것보다 조금 덜 벌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이 삶의 만족도가 더 높다.
-책 속에는 반전과 인간 내면의 탐색과 함께 은근한 유머도 담고 있다. 평소 유머있다는 말을 듣나.
▶별로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4차원'이라는 이야기는 좀 듣는다. 내 소설의 유쾌함을 '거리감'에서 나오는 것 같다. 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심각한 상황에서도 우스운 점이 발견된다. 그래서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진지한 작품에는 1인칭 시점을, 풍자가 필요한 작품은 3인칭 혹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거리감을 준다. 진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의 작품들)을 쓰고 나서 '나한테 이런 유쾌함이 있었네' 하고 깨닫게 되고는 기분이 좋았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소재는 일상생활에서 찾아 쉽고 친근하지만 읽으면서 묘한 '역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멀리 있는 황당한 이야기도 아니면서 들여다보기 싫은 내면의 부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낯선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반드시 재미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기에 재미도 잃지 않았다고 나 스스로 평가한다.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ungaungae@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