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의 고통속에서 길어 올린 사랑과 위안을 남기고... 신영복 교수 별세(종합)

탁월한 저술가, 인문학자이자 명강사, 인간의 관계와 조화를 상징하는 '신영복체'의 서화가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둘베개 제공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사람들은 누구나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는 법이지만 어제와 오늘의 중간에 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큼직한 가능성, 하나의 희망을 마련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됩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담론' 등의 저서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신영복 교수는 2014년 희귀 피부암진단을 받은후 투병해온 그는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끝내 이날 오후 10시 10분쯤 서울 목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20년의 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그는 극한의 고통스러운 환경속에서도 희망과 공감의 메시지를 꽃피워내 우리에게 큰 감동을 남겼다. 시대의 고통을 끌어 안고 스무번의 사계절을 영어의 몸으로 겪어낸 느낌, 그러면서도 사람과 세상에 대한 세밀한 애정과 따뜻함을 잃지 않은 대표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담긴 고뇌 어린 사색은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 책은 그가 1976년부터 1988년까지 20년 20일 동안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어 8.15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출간했다. 큰 고통 속에 있는 인간이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올린 진솔함이 가득하다.

고인은 출소후 성공회대에서 동양고전 등을 20년 넘게 강의한 인문 학자이자 명 강사였으며,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에 사용되었던 글씨체인 '신영복체'를 남긴 서화가이기도 했다. 그의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문장처럼 그의 글씨 역시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깃들어 있는 모습으로 이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널리 사랑받았다.뿐만 아니라 '나무야 나무야'(1997)등의 저서에서 볼 수 있듯 빼어난 그림과 사진도 남겼다. 무엇보다 시대의 아픔을 몸소 겪으면서 이후 세대들에게 살아갈 방향을 제시한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특히 그가 남긴 글씨체는 앞으로 후대에 널리 기억될 문화 유산이라 할만하다. 한글의 형상미를 독특하게 살리면서도 획과 획, 글자와 글자가 서로 기대는 모습으로 '관계'를 중시하고 흑과 백이 '조화'를 이루는 글씨는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사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는 자신의 글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면서 "인생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미술 사학자 유홍준은 그의 글씨체에 대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으로 모두가 뜻을 같이 하여 북돋는 듯한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출상한 신영복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65년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던 중 1968년 통일 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됐다. 출소후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하다 2006년 8월 정년퇴임하고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2014년 암 진단을 받으면서 그 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출소와 함께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98년부터 출판사를 옮겨 돌베개에서 출간됐다. 그후 그는 '손잡고 더불어','나무가 나무에게',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청구회 추억', '다른 것이 아름답다'(공저), '여럿이 함께', '한국의 명강의'(공저), '느티아래 강의실'(공저), '담론' 등의 책을 펴냈다.

1997년 출간된 '나무야 나무야'는 전국의 사연있는 곳을 두루 답사하면서 느낀 점들과 국토와 역사에 대해 사색한 24편의 글을 그림, 사진과 함께 엮은 책으로 이 역시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난해 4월 출간된 '담론'은 25년 동안 그가 성공회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펴낸 책으로 그의 학문과 사상이 집대성된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를 단 이책은 '시경', '주역', '논어', '맹자'등을 통해 현대 사회를 읽어 내는 1부와 20년의 감옥 생활을 바탕으로 쓴 2부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로 구성돼 있다.

성공회대는 "학교장으로 치를 예정"이라며 "빈소 설치 등 정확한 스케줄을 논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유영순(68)씨와 아들 지용(26)씨가 있다.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 돌베개 제공

다음은 고 신영복 교수의 독특한 서체가 담긴 서화작품들이다.

고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처음처럼' . 소주 상표에도 이용됐다. 고인은 옥살이 중에 교도소에서 서예를 배워 출소 후 탁월한 서화 작가로도 활동했다.ⓒ 돌베개 제공
고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함께 맞는 비'ⓒ 돌베개 제공
고 신영복 교수가 남긴 서화 .'언약은 강물처럼' 'ⓒ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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