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반성없는 창비-백낙청에 "지성의 몰락""쇄신 불가능" 비판 분노 쏟아져

원로작가, 평론가 등 SNS 통해 일제히 비판 의견 개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News1

(서울=뉴스1) 권영미 박정환 기자 = 백낙청 '창작과 비평' 편집인이 신경숙 표절 논란' 두 달여만에 '문자적 유사성일 뿐 의도적 베껴쓰기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이후 문단과 출판계에서는 수위높은 비판과 분노의 목소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표절 논란이 발생한 뒤에도 줄곧 침묵을 지키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창비의 계간지 '창작과 비평'과 마찬가지 입장이라는 뜻을 밝혔다. '창작과 비평'은 최근 가을호에서 백영서 편집주간의 글을 통해 "(창비가 펴낸) 신경숙씨의 작품 '전설'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문자적 유사성은 있지만 의도적 베껴쓰기로 볼 순 없다'는 내용의 입장을 내놓았다.

백낙청 명예교수의 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원로 작가, 평론가, 출판관계자 등이 페이스북 등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글들을 잇달아 올렸다. 이들은 "지성의 몰락""앞으로 창비가 어떤 말을 내놓아도 울림이 없을 듯" "이제 창비의 쇄신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비판과 분노의 수위를 높였다. 백교수가 신씨의 표절을 부정하며 논의를 원점으로 돌린 까닭에 평론가들이 표절의 정의에 대해 재확인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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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된 부분은 백교수가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의도적 베껴쓰기로 볼 수 없다'는 출판사의 입장을 다시 확인한 점에 대해서였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언어의 곡예를 통해 신경숙을 비호"하고 "표절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며 이를 여의도 정치같은 "언어의 곡예"라고 비판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문자적 유사성이 아니라 '문자적 동일성'"이라고 주장했으며,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 역시 신경숙이 중요한 모티프와 인물설정, 어휘와 문장을 '가져와 쓰기' 한 일이 "결코 무의지나 무의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밝혔다.

'문학권력'으로서의 창비의 태도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장은수 평론가는 " 우리(창비)는 너희와는 달리 타인의 의도 (양심)를 들여다 볼수 있다는 식의 입장이 가장 문제"라며 신경숙씨 표절의 사실 여부 문제에 대해 창비가 "권력의 시각으로 문제를 정의하면서 문학권력 문제로 확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백 명예교수가 '반성과 성찰은 규탄받는 사람에게만 요구할 일은 아니다'라면서 '지속적인 논의를 하자'는 입장을 밝히면서 평론가들과 작가의 실망감은 창비 출판사 전체로 확대됐다. 김남일 실천문학사 대표는 "(창비의) 쇄신은 거의 불가능하다"라는 의견을 내놨고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 앞으로 창비가 아무리 치열하게 세월호나, 제주 강정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하건 간에 어떤 울림도 감동도 없을 것 같다" 고 참담한 심정을 밝혔다.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 또한 창비를 '단 하나의 사안을 공백으로 남기기 위해 영원히 토론하자는 100인 동색의 지식인 집단'이라며 곱지 않게 바라봤다.

다음은 조해일 소설가, 김남일 소설가, 김응교·천정환·황호덕·손종업·이명원 문학평론가와 장은수 출판평론가 등이 28일~29일 사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 또는 요약이다.

△조해일 (1970년대 베스트셀러 '겨울여자' 작가)

'창비'는 창간사를 쓸 때의 마음으로 돌아오고 신경숙은 '외딴방'을 쓸 때의 마음으로 돌아오고 한반도 사람들은 1945년 8월 15일의 설레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대한민국 사람들은 2014년 4월 16일의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없을까요. (한 때, 책이 좀 팔리는 것에 현혹되어 처음 작가가 되겠다고 작정할 때의 마음을 놓쳐버린, 그것도 이젠 퇴역 소설가의 말이니 물론 귀담아 듣지 않아도 됩니다.)

△김남일 (소설가·실천문학사 대표)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 미루어 짐작컨대, (창비의) 쇄신은 거의 불가능하다. 도대체 그 쇄신의 주체가 누구란 말인가. 나는 오늘 백선생이 직접 나선 데 대해서는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지만, 일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편집위원들은 어디에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적어도 그들도 책임을 나눌 수 있는 주체의 일원이었다면 그동안 어째서 한 마디 언급도 없었던가.

(창비와) 함께 걸어온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있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창비는 '영토' 바깥에서 영토의 건강성을 위해 늘 창조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라고 요구하다가 어느덧 스스로 영토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권성우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앞으로 당분간 창비가 아무리 치열하게 세월호를 얘기하건, 제주 강정을 환기하건, 비정규직 문제를 비판하건, 대학의 몰락을 지적하건, 박근혜 대통령을 질타하건, 통일에 대한 열망을 강조하건, 어떤 문인을 칭찬하건 비판하건 간에 적어도 내게는 어떤 '울림'도 '감동'도 '설렘'도 '깨달음'도 '마음의 서늘함'도 없을 것 같다. 그게 너무 슬프다.

언제 다시 창비에 대한 나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까? 나는 정작 자신이 몸담고 있는 문학장의 모순과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정직한 얘기도 하지 못하면서 세월호니, 강정이니 얘기를 하는 문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길영 (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

"드러난 유사성에서 파렴치행위를 추정하는 분들이 그들 나름의 이유와 권리가 있듯이 우리 나름의 오랜 성찰과 토론 끝에 그러한 추정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십사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반성과 성찰은 규탄받는 사람에게만 요구할 일은 아닐 테니까요.(백낙청 교수)"

이 글을 착잡하게 읽으며, 한 시대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되풀이 볼 수록 마음이 아프다.

△김응교 (문학평론가·숙명여대 교수)

아침(29일)에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전설'을 비교해 봤다. 더 착잡해졌다. 분명히 구조와 인물묘사의 유사성이 보였다. 특히 ‘문자적 유사성’이 아니라 ‘문자적 동일성’이 보였다. '기쁨을 아는 몸' 외에도 동일한 두 단어가 같은 인물을 형상화 하면서 명확히 보였다. 한국어에 없는 일본어식 한자 사용, 한국말로 덜 번역된 한자어 말이다. 검색해 봤더니 두 작품에서만 동일하게 나온다. 이런 ‘문자적 동일성’은 두 소설에서만 나타난다. 우연이라기엔 불가능한 일이다.

△천정환(문학평론가·성균관대 교수)

신경숙은 ‘의식적으로’ '우국'의 '바운드모티프'(작품의 내용과 긴밀히 관련된 모티프)들과 인물 설정을 가져오고, 중요한 대목의 어휘와 문장을 베껴 썼다. 이런 ‘가져와 쓰기’는 결코 ‘무의지’나 ‘무의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름대로 변형하여 다른 작품처럼 보이게끔 몇 가지 장치를 했다. 이 모티프·주제·문장의 변형은 그리 성의 있는 것은 아니라서 금방 표가 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신경숙은 어떤 출처의 어떤 요소와 문장을 변형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나아가 이렇게 써진 글 한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고 잡지사로부터 원고료를 취득했다. 이때 그 행위는 표절-‘도용’이 된다. 나아가 자기이름으로 된 작품집에 아무런 표시 없이 또 실었다. 또 인세를 받았겠다.

△황호덕 (문학평론가·성균관대 교수)

창비는 '단 하나의 사안을 공백으로 남기기 위해, 영원히 토론하는 100인 동색의 지식인 집단'이 돼버렸다. 너들이 뭘 했고 뭘 아나. 내가 창업한 한국문학/인문 시장이니 망가지든 어떻든 우리가 끌고 가겠다, 라는 백 명예교수의 말을 인정한다. 지켜보고도 싶다. 다만, 다음 질문은 더없이 유효해졌다. 위대했던 백 교수의 창비도 이제 역사의 곳간을 까먹는 일만 남은 게 아닐까.

(창비는) 섬세하고 '권위' 있는 무서운 것이 되었다. 저항의 정신은 저항조직의 영도성, 단일대오주의, 공공성을 위한 본원적 축적론, 기업가적 총괄 정신에 침윤되어 (그럴 리야 없겠지만) 자신이 무엇에 저항했는지도 잊어버린 것 같다. 하나 확실해진 것은, 이번 배는 버려야 한다는 것.

△손종업 (문학평론가·선문대 교수)

웃겨. 표절의 고의성이라니.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말도 그래. 문학 안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고 봐. 이건 정치적인 수식인 거야. 문학에는 오로지 표절이냐 아니냐만 있는 거지. 거기에 다른 변명은 있을 수 없어. 장정일은 거기에 패러디도, 패스티시도, 뭐 다른 글쓰기적인 새로운 경향도 있다고 말하려는 듯한데, 가장 단순한 독자도 그런 건 알아. 신경숙의 글쓰기가 상호텍스트성ㅡ그러니까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찾아가던가?

"진실을 인양하라." 이건(신씨 표절 사태는) 한 사회의 보편적 율법의 문제와 다시 만나. 나 스스로가 무언가가 내게 이득이 되기에, 그가 내 가족이나 친구이기에, 내가 속한 느낌의 공동체ㅡ혈연, 지연, 학연 따위를 포함해서ㅡ 의 일원이기에 내가 사소한 잘못을 눈 감거나 다른 평결에 이를 때, 그 작은 공모들이 모여서 결국은 거대한 배를 가라앉게 하는 비극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 관점을 문학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이명원(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창비는 신경숙의 '표절'이라는 '사실'을 부정했다. '혐의'와 '사실'은 완전히 다른 의미다. 더 나아가서 창비그룹과 백낙청선생은 '문자적 유사성'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언어의 곡예를 통해 적극적으로 작가 신경숙을 비호하고 있다. 윤지관 교수의 표현을 빌어 변호라고 해 두자. 문자적 유사성? 일본문자인 히라카나는 한자의 초서체와 유사하다. 거기에서 온 것이니까. 이런 게 '문자적 유사성'이다.

이런 식의 언어희롱은 여의도 정치에서 흔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지식인 사회에서도 만연하기 시작했다. 이런 (표절에 대한 창비의) 말장난과 언어의 곡예를 나는 백낙청 식으로 '파렴치하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것은 문학과 비평의 최소윤리조차 의식적으로 배제해버리는 몰가치와 몰윤리, 몰염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지성의 몰락'을 의미한다고는 말해야 한다.

△장은수(출판 및 문학 평론가)

저는 창비에서 자신의 주장을 빌미삼을 때 타인의 의도를 짐작해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너희와 달리 타인의 의도(양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충 이런 입장인데, 이는 전형적인 관심법이죠. 누군가를 옹호하기 위해 그 마음을 들여다본 이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도 그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들의 글에 깔린 사악한 의도를 알고 있다. 이렇게 말이죠.

신경숙 씨의 표절이, 더 나아가서 그것이 의도적이냐 아니냐가 문학권력 논쟁을 퍼뜨린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권력의 시각으로 문제를 정의하니까 문학권력 논쟁이 불거져 일파만파로 확산된 것입니다.

ungaungae@